8월 초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가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의 정책금리 역전으로 국내 자금이 미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그 어느 나라보다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그 영향은 찻잔 속의 잔 파도에 불과했다. 금리 역전 이후 약 20여일이 지난 현재 미국이나 한국의 금융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이전에 비해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금리가 높은 미국에서 탈출한 자금이 8월 중반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주식시장을 2~3년래 최고가 근처까지 올려놓았다. ◆금리보다는 경제 체질이 중요 실제로 국가 간 자금 이동은 금리 차에 따라 빠르게 이동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환율 위험이 훨씬 크고 헤지 비용 등 제반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만기가 긴 장기채 금리 차이가 커질 때 국가 간 자본 이동이 발생한다. 한국의 경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미국보다 0.8%포인트나 높기 때문에 미국으로의 자금 유출 가능성은 아직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논의되던 8월 초반에 미국 투자자들은 미국 이외 지역에 투자를 늘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예상되던 올 3~4월에는 대외 투자가 다소 주춤했지만 금리가 급등한 8월 이후에는 미국 밖으로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또한 이런 상황을 반영해 미국의 국채 인기가 시들해지면서(한경 8월17일자 국제면) 국제 투자자금의 미국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소비와 부채 공화국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과거와는 달리 안전 통화였던 달러화의 위상이 많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화 위상 약화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있다. 미국은 지난해 무려 6680억달러나 되는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고 재정 적자도 4007억달러였다. 일부 첨단산업을 제외할 경우 미국은 제조업을 거의 포기한 국가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지면 수입이 폭증하는 기형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과 같이 미국 경제가 호황일 경우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대규모로 발생하지만 적자 금액만큼 한국 등 미국 이외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는 늘어난다. 반면에 미국 경제가 침체돼 소비를 줄이면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는 모순적 구조가 현재 국제경제 체제의 본질이다. 여기서 미국의 고민은 지난주 나타난 것과 같이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불안 때문에 금리를 급속히 인상할 경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 경제인 미국은 금리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여야 한다. 또한 장기간의 저금리로 주택담보 대출에 의해 미국의 주택 가격이 급등(최근 18개월간 평균 20% 상승)한 상태인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된다면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미국의 부동산 경기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상관관계가 낮아지는 금융시장 이런 이유로 미국의 금리 인상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미국의 고금리는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되는 동시에 미국 내부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소비 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낮출 경우에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울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금리를 통해 경기,물가,자산가격 등에서 최대 공약수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미국 자체적으로 쌍둥이 적자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경상수지가 안정을 보일 때까지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내수 부양을 통해 고성장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따라서 경기 변동과 자금 흐름의 변화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돈은 미국 이외 지역만을 쳐다보고 있다. 올해부터 미국과 그 밖의 국가 간에 경기나 주가 연관성이 낮아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미국이 기침할 때 한국 등 동아시아는 독감에 걸렸지만 이제 동아시아는 마스크(막대한 외환보유액,고성장 지속)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한국도 함께 좋아지지만,반대로 미국 경제가 나빠져도 한국은 과거에 비해 피해가 적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 비해 저평가됐던 한국 등 아시아 이머징 마켓의 PER(주가수익률)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 skhong@beste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