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최윤(52.서강대 프랑스문화과 교수) 씨가 신작 소설집 '첫 만남'(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장편소설 '마네킹' 이후 2년 만이고, 소설집으로는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이후 6년 만이다. 지난 6년 간 문예지에 발표했거나 써두었던 여덟 편의 소설이 이번 책에 실렸다. 수록작들은 대부분 일상 속 개인의 실존을 탐색했다. 작가가 밝혔듯이 "써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앞에 끌려가 앉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스스로의 작동 법칙에 따라 연결돼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작품에 반영돼 있다. 수록작 가운데 '굿바이' 등에는 모친의 임종에 직면해 작가가 겪었던 심적 고통의 자취가 담겨 있다. 편지글 형태의 '그 집 앞'은 직업 여행가로 살아가는 세 살 위 언니 K에 얽힌 주인공 '나'의 기억을 풀어낸다. '나'가 어렸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온 이질적인 구성원 K가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 보여준 엽기적 행각, 그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형제들, 그리고 '나'가 서른 살이 됐을 때 K와 사막여행을 떠났다가 혼자 사막 한 가운데 버려졌던 기억들이 서술된다. 감각이 예민한 여자주인공이 사무보조원 남자와 사소한 신체접촉 때마다 이상한 파장을 느끼는 모습을 그린 '느낌', 순탄한 생활을 하던 부부 약사가 주식투자로 빚을 진 뒤 겪는 삶의 위기를 다룬 '밀랍 호숫가로의 여행',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며 공허감과 싸우는 딸과 그런 와중에 체력 단련에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굿바이' 등이 실렸다. 수록작 가운데 '시설(詩說)-우울한 날 집어탄 막차 안에는'은 목적 없이 여행길에 오른 여자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서술한 시적 소설이다. 미발표작 '파편자전-익숙한 것과의 첫 만남'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화자인 '나'는 십수 년 전 파리의 한 정신분석자와 면담 과정에서 여섯 살 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이미지로 '가족' '개' '강아지' '금서' '노래' '놀이' '어머니' '성경' '우표' '이사' '종이비행기' '쾌락' 등을 기억해 낸다. 그런 기억의 파편들은 결국 글쓰기의 욕망으로 이어져 있다. 280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