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는 그를 떠나게 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의 차가운 설원에 누워있은 지 1년. 이국땅 고산에 숨결을 묻었던 박무택씨가 엄홍길씨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그를 완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돌무덤으로 그가 그토록 동경하던 에베레스트에 편안히 잠들게 했다.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45.트렉스타) 등반 대장이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29일 오후 1시30분(이하 한국시간)에 박무택씨의 시신을 수습했으나 시신 운구에 실패하고 세컨드스텝 위에 돌무덤을 쌓아 안치했다고 베이스캠프 관계자가 이날 알려왔다. 지난 3월14일 네팔을 향해 출국한지 76일만에 대서사시는 마침표를 찍었다. 악천우 탓에 고전하던 엄 대장과 휴먼원정대는 이날 오전 4시30분 캠프3(8천300m)를 출발해 마지막으로 박씨의 시신 수습작업에 나섰다. 4시간30분 걸려 원정대원들은 결국 박씨의 곁에 도착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 남긴 회한이 뿌리 깊었던가. 박씨의 시신은 쉽사리 그자리를 뜨지 못했다. 에베레스트의 눈과 얼음이 박씨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것. 대원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난 박씨에게 더 이상 아픔 주지 않기 위해 정성스레 얼음을 떼어냈다.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20분만에 원정대는 박씨의 시신을 들고 캠프3를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시신을 수습하기 했지만 운구작업은 더 어려웠다. 50m 거리의 깎아지른 절벽(세컨드스텝)은 원정대의 하산을 막아섰다. 숙련된 산악인들도 혼자 몸으로 내려오기 쉽지 않은 곳. 더욱이 박씨는 70㎏의 몸무게였지만 현재는 몸이 꽁꽁얼어 100㎏ 가까이에 달했다. 100m 정도 길이의 경사진 바위 지대도 기다리고 있다. 캠프3까지 2㎞의 거리는 그야말로 첩첩산중. 세계 산악 역사상 유래가 없는 시신 수습 작업 과정은 하나하나에 뚫어야 될 난관이었다. 100m를 전진하는 데 무려 두시간이나 걸렸다. 히말라야도 눈보라를 몰아쳤다. 결국 원정대는 더 이상 운구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세컨드스텝 위에 박씨의 시신을 고이 묻었다. 원정대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난 3월말 네팔의 임자체봉(6189m)에서 고소적응훈련을 한 휴먼원정대는 4월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천200m)에 도착해 본격적인 시신수습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원정길에 오르기 전 휴먼원정대는 5월 중순을 D-데이로 삼았다. 박씨의 시신을 얼른 내주겠다는 듯 히말라야의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도 잔잔하자 원정대는 일정을 보름이상 앞당겼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시신 수습 계획은 갑자기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다. 날씨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속 20m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서서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 강풍에 시신 수습 작업에 나서는 것은 모험이었다. 오전에 날씨가 맑으면 오후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원정대원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엄 대장 혼자서 악천우에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은 가능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캠프3로 시신을 안전하게 수습해 운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적어도 24시간이 필요했다. 차일피일 미뤄졌고 5월 중순 베이스캠프에서 짐을 나르다 허리까지 삐끗했다. 이달 말에 들어서는 편도선까지 퉁퉁 부어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 여러차례 시신 수습을 위해 캠프3를 향해 올랐지만 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해 다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 대장은 자신과 박씨의 가족, 그리고 산악인들에게 한 '엄홍길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엄 대장은 시신을 유족 품에 안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미 원정대는 이번 원정의 목표를 달성했다. 박씨의 시신을 찾아 어려운 고행길을 나섰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기 위해 다니는 길목에 방치된 박씨의 시신은 이제 동료들의 땀방울을 따스히 느끼며 편히 잠들게 됐다. 이의제 대한산악연맹 국장은 "원정대가 떠났다는 것 자체가 산악인들에게 깊은 독려가 되고 있다. 상황이 좋진 않아 시신을 끝까지 운구하지는 못했으나 박씨가 이제 에베레스트에서 유족들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누울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