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끝났다. 작품 및 감독상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여우주연상은 같은 영화의 힐러리 스웽크,남우주연상은 '레이 찰스'의 제이미 폭스에게 돌아갔다.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 주관으로 1929년부터 매년 봄,전년에 발표된 미국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영화 중 선정된 25개 부문에 수여된다. 선정 기준이 미국적 사고에 치우친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계적인 관심사다. 시상식은 수상작(자) 발표뿐만 아니라 재치있고 솔직한 수상소감으로도 유명하다. 99년 이탈리아의 감독겸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는 외국어영화상에 이어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자 "자꾸 상을 주면 영어실력이 들통날 텐데"라고 웃겼다. 2001년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아 로버츠는 주최측이 말을 끊으려 하자 "잠깐만요. 여우주연상이에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 많겠어요"하고 외쳤고,남우주연상의 러셀 크로는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믿을 것이라곤 용기뿐인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이라고 멋을 부렸다. 올해도 마찬가지.'밀리언…'에서 감독 주연 등 1인4역을 맡은 이스트우드는 "아직도 일한다는 게 기쁘다"면서 "96세인 어머니가 계신다. 젊은 유전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힐러리 스웽크는 다른 후보자들의 연기에 큰 영감을 받고 "남편을 통해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법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제이미 폭스는 "자넬 한번 봤네"라는 시드니 포이티어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며 "어려서 연기지도를 해준 할머니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올해 아카데미상에 대한 세평은 마땅히 받을 만한 작품과 사람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밀리언…'이 경쟁작 '애비에이터'를 누른 건 75세 감독,68세 조연(모건 프리먼),89세 디자이너(헨리 범스테드) 등 노장들의 역작인데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삶을 방기하지 않는 시각이 작용했다고도 한다. 수상자들의 노력에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스웽크는 여자복서역을 대역 없이 하느라 혹독한 훈련을 거쳤고,폭스 역시 맹인가수역을 맡느라 눈을 가리고 살아 폐쇄공포증을 겪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뒷말 없고 가슴을 적시는 수상소감을 듣는 영화제 시상식을 볼 수 있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