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자수가 감소하고 있느냐 하는 논쟁에 최초로 불을 지핀 사람은 1992년 덴마크의 닐스 스카케벡 박사였다. 그는 덴마크 남성의 1mg당 정자수가 50년 사이 45% 감소했고,사정량 역시 20% 줄었다는 수치를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자수는 불변'이라는 원칙이 확고했던 터여서 학계에서는 반신반의의 반응을 보였다. 이후 미국 등지에서 같은 내용의 연구논문이 나오면서 닐스 박사의 주장은 정설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학자들의 관심은 온통 여기에 집중됐다.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이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환경호르몬'이란 용어는 일본학자들이 NHK방송에 출연해 처음 사용하면서 일반화됐다. 독성이 있는 유해화학물질이 체내로 유입돼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 해서 재치있게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분비계교란물질 또는 내분비계장애물질로도 불린다. 정자수의 감소는 생식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각국은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백악관 주최로 관련 워크숍을 개최하고 화학물질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가 하면,일본 역시 정부주도 아래 학계 및 산업계와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곤 한다.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러 차례 국제회의를 가졌다. 국내에서도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고엽제 피해자들이 불임이나 성기능장애를 일으키고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일부 생산공장 종업원들의 불임이 문제되면서 환경호르몬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이렇다 할 연구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국립독성연구원이 우리나라 20대 초반 군인 10명 중 4명꼴로 정자의 운동능력이 기준치에 못 미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산아장려책과 함께 최근 부쩍 늘고 있는 불임과 관련돼 관계당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몇년 전 환경단체가 "당신의 정자는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친 생경했던 구호가 이제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 느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