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은 국내에서 제일가는 한약 시장으로 유명하지만,사실은 40년 이상된 농산물 시장이 그 보다 먼저 터를잡았다.


거기다가 최근 수산물 좌판까지 들어서 제수용품을 장만하는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설을 닷새앞둔 4일 오후,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사거리에서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칼바람이 매섭긴 했지만 식당 가마솥에서피어 오르는 하얀김을 보니 장터의 정취가 느껴졌다.


"아가씨 이리와요.물건 한 번 보세요"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귀를 울린다. 건과 점포를 먼저 찾았다.


곱은 손을 불면서 밤값을 묻자 주인 아주머니가 "이렇게 추운데 장보러 왔냐"며 따뜻한 녹차 한잔을 권했다.


"밤 한되(9백g) 4천원,많이 줄게 가지고 가 아가씨." 한되가 족히 넘치게 담아보인다.


중국산 아니냐고 묻자 "중국산은 알도 잘고 윤기도 없다"며 "요즘 중국산이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손님들도 잘 알아서 함부로 속여 못판다"고 핀잔을 준다.


곶감은 종류도 다양했다.


한팩 10개가 4천원 정도.그래도 곶감 하면 상주라며 10개 8천원짜리 상주 곶감을 권했다.


청과 점포엔 과일이 얼세라 점포마다 앞가림 비닐이 이중 삼중으로 쳐져 있다.


부사 사과 한개 2천원,신고배 한개 2천5백원.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자 "올해 사과 작황이 안 좋다"며 "며칠 지나면 더 오르니 지금 사라"고 한다.


제상에 올리는 건 알이 굵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과일값이 너무 비싸 굵은 알은 많이 안 사간다"며 한개 3천원짜리 사과 대신 1천5백원짜리 사과를 보였다.


점포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사과는 1천5백∼2천원,배는 2천∼2천5백원선에서 팔리고 있었다.


할인점보다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물 좌판들은 같은 골목에 모여있다.


중국산 북한산 국산의 도라지 고사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국산고사리는 한근(4백g)에 5천원,수입산은 한근에 2천원이다.


"제상 올릴 건데 그래도 국산 써야죠 아줌마?" "수입산도 괜찮아.많이들 사가.북한산도 맛있어."


가격만 물어봤는데 그새 고사리 한근이 봉지에 담겼다.


너무 비싸다고 뜸을 들이자 "이 만큼 더 주면 되겠느냐"며 한움큼을 더 집어보인다.


한근 가격에 반근은 덤이다.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던 상인들이 하나 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시장 막판 떨이는 할인점의 '가격 파괴'를 능가했다.


10마리 1만3천원 하던 조기가 '비싸다'며 돌아서는 등 뒤에서 8천원까지 떨어졌다.


떡집에선 국산 쌀로 만들었다는 떡국떡이 4천원에서 3천5백원으로,"떡도 얼어 싸게 판다"며 금방 뽑아내 김이 펄펄 나는 가래떡을 뚝 떼준다.


가래떡을 오물오물 씹으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좌판을 정리하는 50대 상인에게 "많이 파셨냐"고 말을 건넸다.


상인은 "오랜만에 대목 재미 좀 봤다"며 "계속 이렇게만 팔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웃어 보였다.


송주희 기자 y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