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교수ㆍ경제학 > 최근 삼성전자가 SK㈜ 지분 1.4%를 사모펀드를 통해 사들인 것과 관련해 민족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의 강력한 재벌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대적 인수에 대응하기 위해 결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유력인사도 '백기사'로 나선 것은 우정어린 행동이지만 국수주의적 흐름에 편승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우리의 실제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외국자본은 국부유출 논쟁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자본을 배척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자본의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자본의 성격마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옥석(玉石)은 어디에도 있게 마련이다. 외국자본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투기자본인지 투자자본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외국자본 모두에 '천사표'를 붙이는 것은 외국자본을 무조건 배타시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자본의 성격을 사전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나 그 행태를 통해 사후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성격에 따라 그 대응은 마땅히 달라야 한다. 자본의 성격에 대해 선별안을 갖지 못하면 투자자본은 투기자본에 의해 구축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외국자본의 유입을 적극 유도했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론 우리 경제를 담금질하기 위한 필요하고도 적절한 조치였다. 구체적으로 '50%+1주'의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폐지했고 외국인의 상장기업 주식취득제한(10%)도 폐지했다. 아울러 공개매수기간 중 주식발행금지 조치도 내려졌다. 그 결과 외국자본의 유입은 봇물을 이루었다. 하지만 국내기업의 경영권방어를 위한 조치도 취해졌다. 5% 이상 주식 매입시 지분변동이 생길 때마다 신고하는 '5%룰'과 대기업집단 금융계열사 의결권의 제한적 행사 허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개정은 이러한 최소한의 기본틀을 와해시켰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범위는 15%로 축소되고 출자총액규제 유지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출자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출자규제와 의결권 제한은 국내기업에만 적용되는 역차별규제인 것이다. 이는 마치 외국자본의 '창'은 놔두고 우리 기업의 '방패'만 뺏은 꼴이다. 우리의 규제 체계는 기업사냥을 위한 최적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취약해졌다. 삼성전자는 SK㈜ 지분매입 목적을 백기사가 아닌 단순투자로 밝히고 있다. 3세대 휴대전화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사업자 간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행간에는 SK의 원군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어찌 보면 경영권 방어수단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백기사'는 선택가능한 경영권 방어의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백기사 역할의 수행여부는 개별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정당한 시장행동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SK 지분매입을 반외국인 투자로 치부할 이유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투기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SK는 소버린에 공격의 틈새를 주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과거지사다. SK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경영이다. 소버린을 폄훼해서가 아니라 소버린은 기업경영능력이 없는 헤지펀드다. 이제는 실체가 모호한 사모펀드 소버린이 표방하는 지배구조개선 명분 이면의 숨은 의도를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소버린 개입 이후 SK의 자구노력은 상당 정도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 따라서 개별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백기사를 국수주의로 덧칠해서는 안된다. 경영권 방어가 국수주의의 발로인가?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