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집에 전화를 거니 어머니가 받으셨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몸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았다. 칠순이 넘은 양반이 가게 일에 시달리신지가 몇 달째니 그러하실 만도 했다. 나는 효녀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애교도 없고 따뜻한 말도 잘 못한다. 내 일에 치어서 어머니를 살펴드리지도 못한다. 어지러워서 쓰러지셨을 때도 나는 출근하느라 몰랐었다. 나중에 어떤 후회를 감당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어머니는 입맛이 없어서 저녁을 거르셨는지 빵을 사오라고 하셨다. 빵집에 들러서 고르고 골라서 사갔다. 우유를 데워서 꿀을 타드렸더니 빵은 조금 드시고 우유만 다 드셨다. 옆에서 맛있게 빵을 먹던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내가 사온 빵이라는 게 내가 좋아하는 빵 위주였던 것이다. 어쩌다 집으로 전화를 건 딸자식은 어머니를 챙긴다면서 저도 모르게 제 입맛을 챙긴 것이다. 친구 중에 소문난 효녀가 있다. 그 친구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제사상은 도맡아 차린다. 명절 때는 물론이다. 제사 때나 명절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설거지다! 이 효녀가 하루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드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드시던 음식을 입에 못 댈 정도였는데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서 만들어드렸고 맛있게 잘 드시더니 기운을 차리셨다는 것이다. 나는 기가 죽었다. 나는 소문난 불효녀였다. 그리고 그 요리는 너무나 간단해서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다고 효녀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 심통이 난 나는 효녀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아,됐어.그만 해!" 그런 그 효녀도 프랑스 유학을 가느라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나는 빵을 먹다 말고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렇게까지는 못해 드려도 평소에 다정다감한 딸이라면 어머니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좋은 이야기 동무가 될 수 있다는데,그런데 이 딸은 나이 들수록 자기 일 밖에 모르고 살지를 않는가. 빵을 든 내 손이 부끄럽고 그 빵을 먹고 있는 내 입이 미웠다. 어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밤잠을 못 이루신다. 자식 걱정 때문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인생은 자식 걱정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맹목적이고 끝이 없어서 세상의 모든 자식 들은 태어날 때 이미 보답할 수 없는 그 사랑에 대한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