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당국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51)씨의 사망 보도로 남북 군사회담 지연이 장기화할 것인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은 지난 7월 14일 북측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여파로 같은 달19일 이후 미뤄지고 있는 장성급군사회담의 실무대표 회담에 대해 북측이 을지연습(8.23~28)이 끝나고 난 뒤에는 성의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당초 광복절에 맞춰 철거키로 한 양측 군사분계선(MDL) 지역의 선전수단 제거문제를 북측이 마냥 모른체 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인 것이다.

북측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나 다름없는 MDL지역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외부세계의 소식과 남한 가요 등에 어린 병사들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감내하기 힘들어 했고,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를 중단하도록 남측에 집요하게 요구해온게 사실이다.

장성급군사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박정화 해군준장은 이달 17일 북측 단장인 안익산 인민무력부 소장에게 실무대표 회담을 조기에 열어 2~3단계 제거방안을 논의하자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발송해 놓은 상태다.

남북관계를 비롯해 전반적인 대외관계에 대한 방향키를 쥐고 있는 북한 군부는전통문은 수령했으나 아직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실질적으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온 고씨의 사망은 북한 권력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최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보여 군부로서도 남북관계등 대외변화 모색보다는 내부상황에 눈에 돌릴 것이란 점은 자명해 보인다.

더욱이 고씨의 소생인 정철(23)과 이미 사망한 성혜림 사이에 태어난 정남(33)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권력암투설이 심심치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를 보위하는 것이 최대 임무인 군부가 이를 '강 건너 불 구경'식으로 일관할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부 일각에서 남북간 군사채널 뿐 아니라 당국간 접촉 지연도 상당기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않다는 지적이다.

31일부터 내달 3일까지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한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가 북측이 일정 협의에 불응함으로써 끝내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씨가 사망한 것이 확실하고 그의 사망을 둘러싼 유언비어 등 내부적으로 동요 기미가 보일 경우 북한 군부는 이를 돌파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외관계 개선에 눈을 돌릴 것이란 관측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군의 한 관계자는 "고영희의 사망이 확실하다면 북한 지도부는 당분간 체제안정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나름대로 안정이 됐다고 자신감이 생길 때 적극적인 대외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