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기록적인 배럴당 50달러 수준에 육박하고있는 것은 주로 헤지펀드에 의한 투기성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최고 10달러 가량이 `투기 프리미엄'으로 분석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장의 장기적 수급 측면 등을 고려할 때 유가가 배럴당 30-35달러 수준이라야 정상인 것으로 시장 관계자들이 본다면서 그러나 선물 가격이 이처럼 높은데는 헤지펀드의 농간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석유소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석유시장이 "지나치게 넘쳐 흐른다"고 우려했음을 신문은 상기시켰다.

실물경제학자들은 석유 수요가 올들어 지난 28년 사이 가장 크게 늘어난 반면산유국들의 생산 여력은 지난 근 3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면서 여기에 이라크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불안까지 겹쳐 유가가 폭등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지금의 높은 유가도 인플레 요인 등을 감안할 때 지난 79년말 배럴당 근100달러나 됐던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런 견해에 동조하는 골드만 삭스의 제프리 커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장기적인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유가가 30-35달러인 것이 정상이라면서 그러나 현물과장기선물 가격차와 과거의 가격 추이 등을 종합해 보면 "지금의 유가도 그렇게 높다고만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고유가 뒤에 헤지펀드의 농간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입을 모은다.
헤지펀드가 9월 선물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유가를 50달러 이상으로끌어올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주 현물과 5년장기선물간 가격차가 배럴당 10-12달러나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석유메이저 관계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헤지펀드들이 콜옵션과관련해 자신들의 현금 포지션을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배럴당 50달러를 넘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옵션이란 만기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을 말한다.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케빈 노리시는 신문에 "(상품)시장 거래에서 일부 투기가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노리시는 그러나 최근의 높은 유가 이면에는 이례적인 수요 폭등이라는 측면도강하게 작용한다면서 미국의 주간 석유수급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즉 고유가에도불구하고 가솔린 소비가 기록적으로 증가했으며 디젤유 역시 6%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석유 수입이 연율 기준으로 올들어 50%나 증가한 점도 상기시켰다.
반면 이라크에서 하루 90만배럴의 공급이 줄어드는 등 산유국의 수급조절 여력에 문제가 있음도 강조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정유업계 관계자들도 헤지펀드에 화살을 겨냥했다.

이들은 50달러 유가가 지금의 시장 펀더멘털로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이 가운데 최고 10달러는 헤지펀드에 의한 `투기 프리미엄'이라고 분석했다.

관계자들은 그나마 헤지펀드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즉 지난 2월 최고치를 보였던 헤지펀드들의 롱 포지션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면서 지난 6월 2억1천500만배럴이던 것이 현재 1억배럴로 급감했다고 집계했다.

헤지펀드가 달러 약세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석유 투기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OPEC 관계자는 앞서 달러 약세로 인해 달러로 결제되는 석유에 대한 구매력이 약화된 것을 감안하면 유가 강세가 이해될만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석유시장이 성격상 다른 상품시장에 비해 등락이 심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파이낸설 타임스는 현재 석유시장의 가격 등락률이 약 26% 수준이라면서 이는 이라크 전쟁 때의 70%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가격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골드만 삭스의 커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시장에서 투기가 이뤄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유럽 석유메이저 간부는 신문에 "최근의 유가 폭등이 펀더멘털보다 시장 내 불안감에 지나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그러나 실상은 달라 한 예로 이라크의 경우 이달들어 석유수출 규모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간부는 그러나 이런 불안감이 계속 시장을 짓누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따라서 "6개월 후에도 유가가 30달러가 아닌 50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 석유부 간부는 내달 15일 OPEC 석유회담이 열리는 것과 관련해 OPEC가 고유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그간 유지해온 배럴당 22-28달러의 가격 밴드제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20일 말했다.
OPEC는 지금의 고유가가 수급 불균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투기와 심리적 불안감에 크게 기인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