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요청으로 25일 시작된 감사원의 `김선일씨 피살사건' 관련 조사에 외교통상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4개 기관이 조사 대상으로 포함돼, 해당 기관에 대해 어떤 조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감사원의 이번 조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AP통신의 `김씨 실종여부에 대한 외교부 문의' 주장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여부이며, 둘째는 김씨의 피랍 및 구출협상 전과정에 대한 사실확인이다. 하지만 김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정부 외교.안보 관련 기관들의 정보력 및 협상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른 만큼, 전반적인 외교.안보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로 이번 조사가 활용될 수도 있다. 가장 중점적인 조사 대상으로는 외교부가 꼽힌다. AP통신과의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인 데다, 김씨의 피랍 사실이 알려진 직후 석방협상 등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외교부를 중심으로 조사해 나갈 것"이라며 "당장 오늘부터 외교부에 감사요원이 나가 자료 등을 수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에 대한 조사에서는 `심문 비디오 테이프'를 근거로 AP통신이 김씨의 실종여부를 문의한 직원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동시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 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진다. 이는 외교부가 김씨의 피랍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첩보 및 단서를 접하고도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피살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만약 AP통신측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내적으로는 `직무유기'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며, 대외적으로는 외교.통상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신뢰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외교부는 김씨의 피랍이 알려진 직후부터 피살까지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 중점적으로 조사받을 전망이다. 여기에는 주이라크 대사관도 조사대상에 포함된다. 이라크 거주 교민이 소수임에도 김씨가 피랍된 지 20일이상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현지 대사관의 미흡했던 초기대응, 교민 보호책무 소홀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씨의 피랍 사실이 알려진 직후 어떤 식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으며, 김씨가 피살된 순간까지도 외교부 차관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한 근거 등도 조사해야 할 부분이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사단이 이라크 현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혀 강도높은 조사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감사원은 외교부 외에도 국방부, 국정원, NSC 등 이번 사건 전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3개 정부 기관에 대해서도 `필요에 따라' 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정부의 정보력 및 협상력 부재를 전적으로 외교부 탓으로만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시스템의 전반적 부실로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부가 `발표' 역할을 맡아 책임이 큰 것으로 비쳐진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피랍 사실이 알려진 직후 NSC 상임위가 긴급 소집됐으며 외교부와 NSC와의 대책회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정부의 석방 협상 과정에 유관 기관간, 특히 NSC와의 협조 및 조율이 이뤄져 왔으며 외교.안보시스템을 NSC가 관리한다는 점에서 NSC는 협상과정 및 대응실태 등에 대한 조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부의 경우에도 이라크 현지에 상당수 군 병력이 나가있으며, 이라크 추가파병을 위해 수차례 이라크 현지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정보 부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또한 교민안전관리 대책에 있어서도 1차적 책임은 외교부가 지고 있지만, 앞으로 이라크 파병부대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안전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이밖에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실종 과정, 납치 주체, 협상 진행과정 등과 관련해 이렇다할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조사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감사원이 각종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관에 대한 조사 뿐 아니라 각종 의문 및 논란의 한 당사자인 가나무역과 AP통신 등 민간 기관에 대한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피랍사실을 즉각 대사관에 신고하지 않고 독자적인 협상을 시도한 까닭, 김씨가 피랍된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대사관을 4차례나 방문했는 데도 김씨의 피랍이 일절 언급되지 않은 이유 등이 함께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논란을 촉발시킨 AP통신이 외교부의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이번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나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가나무역이나 AP통신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감사원이 조사할 권한이 없지만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