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두려워 말라. 지금 같은 조직문화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실패해도 좋으니 자신있게 일하자." 지난해 11월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된 LG전선 임직원들은 요즘 '과감한 변신'을 요구하는 구자열 부회장의 요구에 얼이 빠져 있다. "지금같은 보수적인 기업문화로는 더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구 부회장의 지적에서 LG전선에 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쉽게 알 수 있다. 구 부회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변화ㆍ도전ㆍ혁신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전선 시장이란 곳은 워낙 '나눠먹기'식으로 분할돼 있었지요. 구태여 전략을 세우거나 마케팅 활동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구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무엇보다 과단성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든지 투자비를 들여도 좋다며 과감한 연구ㆍ개발(R&D)을 주문했지만 대다수 임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전선사업만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할 때거든요. 다른 업종의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주력업종을 다각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R&D 투자도 3배 이상 늘릴겁니다." 구 부회장은 "전자 부품소재 부문과 전력·통신 부문에서 신사업 분야를 발굴한 뒤 이를 전략업종으로 육성할 방침"이라며 "현재 일본 노무라증권 산하 리서치센터로부터 'R&D 관련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을 받는 이유에 대해선 "LG전선이 보유한 고분자 기술과 금속 기술 등을 이용해 어떤 사업을 시작하면 돈이 될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구 부회장은 올해초 기자회견에서 △LCD용 부품인 FCCL(연성회로기판) 및 2차 전지용 소재 사업 △컴퓨터 관련 핵심 모듈 사업 △FTTH(광가입자망 사업) 등을 앞으로 추진할 신사업 분야로 꼽았지만, 컨설팅 결과에 따라 색다른 분야로의 진출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공략하기 위해 중국 진출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5천만달러를 들여 중국에 기기선 부스닥트 고무선 등 특수전선 생산공장을 설립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 공장은 LG산전과 함께 중국 장쑤성 우시시에 조성한 10만평 규모의 '우시 생산단지'에 오는 2007년께 들어선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LG전선의 인건비 비중이 높다고 해서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에 진출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그러나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은 더하다"고 털어놓았다. 구 부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기업인을 응원해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반기업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며 "반기업 정서가 계속될 경우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하거나 한국이 아닌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곳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 부회장은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반 그룹사와 달리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강조하는 LG전선그룹의 '느슨한 형태'에 대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경영이 투명해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LG 브랜드를 계속 쓸지 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5년간은 사용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 브랜드가 중국 등 해외에서 워낙 인지도가 높아 마케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 < 구자열 부회장은… > 'LG가(家)'의 2세인 구자열 부회장(51)은 20년 가까이 국제금융 업무를 다뤄 금융감각이 탁월하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구평회 창업고문의 장남으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LG투자증권 등을 거치며 국제금융을 익혔다. 2001년 LG전선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 제조업을 접한 그는 지난 1월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영어와 일어 실력은 수준급. 취미인 산악자전거는 40대에 시작했지만 이미 국내 주요 코스는 섭렵했고, 해외 레이스에 참여하기도 한다. 골프는 싱글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