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어려워진 기업들의 '수출 올인'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는 중국과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시장의 수요 증가 덕분도 있지만, 이같은 측면도 갈수록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수출과 내수의 연결 고리가 끊긴 상황에서 수출에 전적으로 기댄 비정상적인 경제 성장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력 수출 품목이 반도체 통신기기 등 고부가 첨단 업종에 편향돼 있고, 기업들의 부품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의 수출 증가는 내수를 진작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부품ㆍ소재 등의 수입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투자ㆍ소비와 따로 노는 수출 기록적인 수출 증가세가 바닥까지 떨어진 내수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수출 품목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컴퓨터 등 고부가 정보기술(IT) 첨단업종 수출은 7백74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했다. 올들어 4월까지도 IT업종의 수출 비중은 40.2%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업종의 부품 해외 의존도가 휴대폰의 경우 44%,컴퓨터 68.8%에 달해 수출 증가가 국산 부품과 설비 구매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수출의 수입유발계수(2000년 기준)는 0.37로 소비(0.21)나 투자(0.35)보다 높다. 특히 전기ㆍ전자 업종의 수입유발계수는 0.46에 달한다. 박봉규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은 "국내 부품ㆍ소재 기술력이 대기업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중소 부품ㆍ소재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투자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수출이 내수에 큰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수출에 사활 건 기업들 이같은 상황에서 상당수 기업들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수 시장을 단념한 채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 내수 판매 목표를 연초 71만대에서 66만대로 5만대 줄이고 내수 감소분을 해외 시장에서 소화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발매한 신형 모델 '투싼'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가 도무지 살아날 것 같지 않아 당분간 수출 드라이브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들도 최악의 내수부진을 수출로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전자업체들은 특히 중국 인도 등 신흥 시장과 동남아시장 등에선 한국산 제품의 판매 호조로 "분기별로 수출 목표를 상향조정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류시훈ㆍ이정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