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나는…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길은 길에 잇대어 끝없으므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 의심하면서.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말할 것입니다.…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모든게 달라졌다고.' R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보여주듯 선택이란 언제나 계산과 갈등, 설레임과 불안을 수반한다. 게다가 일단 선택한 건 되돌리기 어렵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지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뭘 하면서, 누구와 살아갈지' 모두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어렵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게 사람의 일인데다 최선의 의도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흔하므로. 뿐이랴. 한때 선(善)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거꾸로 악(惡)인 수도 적지않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운명을 바꿔 놓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위험 또한 상존한다. 영화 '선택'의 실제 주인공인 비전향 장기수, 광복 후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말에 북한을 택하고 끝내 전향을 거부, 43년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김선명씨의 선택도 선택이요, 고백록에 가까운 에세이집 '선택'의 저자로 성고문 폭로 당사자라는 굴레를 벗고 여성학자로서의 삶을 택한 권인숙 교수(명지대)의 선택도 선택이다. 어떤 경우든 선택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어야 마땅하다. 선택의 결과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니까. 군중을 격정 속에 몰아넣는 그 누구도 그로 인해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일을 수습하지 못한다. 분위기나 시선, 명분 때문에 선택했다는 사실이 개인의 삶에 그 어떤 보상을 가져다줄 수 없음도 물론이다. 살다 보면 의지에 반해 행동하거나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가 갈파했듯 선택은 실존의 증거다. 가야할 길을 고르자면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고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한다. 선거 역시 싫든 좋든 선택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냉엄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