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한국군 자이툰부대를 이라크 북부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파견키로 합의함에 따라 파병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을 촉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쿠르드족들이 이라크 신정부 출범 시기에 맞춰 그동안 은밀히 추진해온 분리독립운동을 본격화할 경우 자이툰부대가 종족분쟁에 휘말리면서 아랍권 전역에서반한감정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라크 북부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는 한국군 자이툰부대의 새로운 파병지로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곳이다. 리카도 산체스 연합합동동맹군사령부(CJTF-7) 사령관이 최근 바그다드를 방문한김장수 합참 작전본부장에게 "키르쿠크에서 한미 양국군 공동작전이 힘들다면 주둔지를 다른 미군 관할지역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을 때 미국의 의중이 이미 감지된것이다. 미군이 관할하는 이라크 북부지역 가운데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 등 쿠르드족자치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미군병력이 최근 교체돼 한국군이 주둔할수 있는 지역은 극히 한정됐기 때문이다. 한승주 주미대사가 지난달 29일 미 플로리다주 탬파의 중부군사령부를 방문해랜스 스미스 부사령관과 기자회견을 가졌을 당시 자이툰부대의 새로운 파병지의 윤곽은 더욱 뚜렷해졌다. 스미스 부사령관은 "스페인군이 맡아온 나자프는 매우 협소한 지역이다. 한국군 은 더 넓은, 독립적인 지역을 맡게 되며, 그 지역은 근본적으로 평화재건 활동에 주력할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방부가 키르쿠크 대신 파병을 가장 선호했던 나자프를 사실상 배제한 채대체파병지와 관련한 키워드를 던진 것이다. 스미스 부사령관은 또 "한국군은 근본적으로 평화재건 활동에 주력하면서 방어차원에서 일정한 수준의 정찰 등 통상적인 군사작전을 펼친다. `이라크 반군(저항 세력)'에 대한 한미간 공세적 차원의 공동작전은 없을 것"이라고 부연해 새 파병지로쿠르드족 자치지역을 암시했다. 합참은 1일 오후 파병후보지로 그동안 충분히 예상됐던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를 미군으로부터 통보받고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이를 보고해조만간 두곳 중 한 지역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 쿠르드족 자치지역 중 어느 곳으로 자이툰부대를 보내더라도 파병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을 촉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국군이 쿠르드족 지역에 파병될 경우 이라크전으로 피해를 입은 곳에 군대를 보내 평화재건을 돕는다는 파병 취지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엉뚱한 지역으로파병돼 대국민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아르빌와 술라이마니야는 1991년 걸프전 이후 미.영 연합군의 비행금지구역(No-fly Zone) 설정에 힘입어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독립국가에 버금가는 자치를 누려 왔고, 전쟁피해도 겪지 않았다. 따라서 쿠르드족 자치지역은 10년 넘게 유엔 금수조치에 시달렸던 다른 지역에비해 사회기간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쿠르드족 지역은 파병장병들에 대한 안전은 당장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전투병 비율이 절반이 넘는 3천600여명의 한국군이 주둔할 만큼 치안수요가 많지 않아정부가 공언해온 파병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받아온 쿠르드족 지역 주민들은 친미 성향이강하고, 지난해 이라크전 당시 미군이 키르쿠크에 무혈 입성하는 데 기여한 페쉬메르가로 불리는 쿠르드족 민병대가 자치지역의 치안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안이 안정된 이들 지역에는 최근 전투부대인 1∼2개 중대가 빠지고, 민사중대와 본부대대로만 구성된 `마이너스 대대급' 규모의 미군이 형식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3천600여명의 한국군이 배치될 경우 치안문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평화재건 임무에만 치중할 수 있을 전망되나 중장기적으로는 안전문제도 장담할 수 없을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다수종파인 시아파의 반발을 사고 있는 쿠르드족 자치 문제가 2005년 이라크 영구헌법 성안 과정에서 핫이슈로 부각돼 쿠르드족 자치지역이 엄청난 분쟁의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지지하는 쿠르드족 자치와 쿠르드족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독립국가 창설 움직임에 대해 이라크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아랍계는 물론이고 터키, 시리아, 이란 등 주변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이툰부대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주둔하며 이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으로 외부에 비쳐진다면 대부분 산유국인 주변 아랍권의 반발을 촉발, 우리의 석유수급에차질을 빚는 등 국익에 심각한 악재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미국이 강력하게 희망했던 키르쿠크를 피하고 이라크 북부지역을 선택해한미동맹 강화과 국익 실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는 파병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내부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어 향후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군 관계자는 "자이툰부대를 이라크 북부로 파병할 경우 명분과 실리 모두 놓칠수 있다. 지금이라도 국익 차원에서 파병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