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회사 정관에 '독소조항'을 집어넣는 사례가 잇따라 논란이 일고 있다. 경영진 교체시 수십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는 '황금낙하산' 제도나 이사 해임시 출석주주의 90% 이상 동의를 요구하는 '초다수결의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조항은 M&A를 통한 시장 활성화에 역행하는 데다 자칫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오리스는 지난 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변동으로 이사회 임원의 과반수가 동일한 시기에 비자발적으로 퇴직하는 경우 통상의 퇴직금 외에 퇴직금의 6백%를 위로금으로 지급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또 현대멀티캡과 진흥기업(거래소기업)도 올해 주총에서 비슷한 정관 개정안을 상정한 상태다. 인투스테크놀러지와 케이디씨정보통신 스타맥스 등은 적대적 M&A에 의한 이사교체시 출석주주의 90% 이상,발행주식의 70∼80% 이상 찬성을 요구하는 조항을 새로 삽입키로 했다. 이사의 해임 의결정족수를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상법 규정보다 훨씬 까다로운 요건을 제시한 것이다. 이 같은 조항은 적대적 M&A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현대멀티캡 관계자는 "현 대표의 지분이 8.2%에 불과한 데다 자본잠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지분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경영정상화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시그엔은 최근 올해 정기주총에서 '이사의 임기 전 해임시 출석주주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한다'는 조항을 넣으려다 포기했다. 시그엔의 대주주인 쓰리알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독소조항을 넣는다'는 눈총을 받아 기업 이미지만 나빠지는 데다 정작 실효성도 불투명해 빼기로 했다"고 말했다. 작년 7월 황금낙하산 조항을 도입했던 한빛네트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이번 정기주총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경영진이 경영에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한 데다 황금낙하산 등을 도입하면 책임을 피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에서 처음으로 황금낙하산을 도입했던 옵셔널벤처스는 이 제도를 회사 자금 횡령 수단으로 악용한 전력이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