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짐 챙기고 마음 다듬으셨으면,언제라도 자신있게 떠날 준비가 되셨으면,조용히,정말 출발하시기 전에 나 자신을 용서하세요. 사느라고 애썼다고,고맙다고,나한테 말씀하시고,나를 사랑해주세요." 지난해 정년퇴임한 정진홍 전 서울대 교수가 산문집 '잃어버린 언어들'(당대,1만원)을 내놓았다. 삶과 나이듦,죽음,종교 등에 대한 원로 종교학자의 성찰이 담긴 글 44편이 실려있다. 우선 '청빈'이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청빈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경계한다. 청빈은 부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므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의 물화(物化)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경청할 만하다. 죽음에 대한 신비로움이 퇴색하고 생리현상이나 물질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죽음은 그 존엄성을 잃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인구문제,사망률,전쟁,사고,재난 등에서 죽음은 숫자로 환원되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죽음이 '헐값'이 되면서 죽음을 피하고 오래 살려는 몸부림은 더 처절한 자기기만적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잃어버린 언어들'이라는 글에서는 "오늘 우리 사회는 자존심,염치,희생,신비라는 말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도덕불감증에 걸린 우리 사회를 진단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내 생각이 과연 생각다운 생각인가 되물음으로써 자존심,염치,희생,신비라는 용어들이 우리 일상의 언어 속에서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종교계에 대한 고언도 담겨있다. "종교는 닫혀진 삶이 마련한 하나의 틈 또는 출구"라며 종교 상호간의 보다 유연한 접근을 촉구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