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지만, 외국의 국가원수들 가운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탄핵안 가결로 물러난 국가원수들이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탄핵안의 통과로 권좌에서 쫓겨나는 `불명예'를 피해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임했으며 일부는 탄핵안이 최종 부결된 경우도 있었다. 의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축출당한 대표적인 케이스는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와히드 대통령이다. 와히드는 1999년 인도네시아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대통령에 선출됐으나 조달청 공금횡령 사건과 각종 부패스캔들로 취임 2년만인 2001년 7월 의회의 탄핵안 가결로 쫓겨났다. 당시 와히드는 탄핵안 투표를 앞두고 의회의 활동정지와 조기총선 포고령을 내리는 등 강력히 저항했으며 탄핵안 가결후에도 여전히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면서 퇴진을 거부했으나 결국 미국행을 택했다. 또 1997년 2월 에콰도르 의회는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에 대해 무능을 이유로 탄핵, 권좌에서 축출했다. 탄핵안 투표를 앞두고 자진 사임한 경우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닉슨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을 도청한 이른바 `워터게이트'사건으로 1974년 8월 하원 본회의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스스로 물러났다. 닉슨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탄핵과 관련해 하야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가운데 탄핵안이 발의된 경우는 닉슨 이외에도 두 명이 더있으나 모두 탄핵안이 최종 부결됐다.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42대 빌 클린턴대통령이 이에 해당한다. 1968년 존슨은 남북전쟁 후 자신의 남북화해 정책을 거부한 국방장관을 해임하자 당시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에 의해 탄핵안이 발의돼 하원에서 가결됐으나 상원에서는 정족수에 단 1표가 부족, 아슬아슬하게 탄핵을 면했다. 미국 역사가들은 존슨의 탄핵사안에 대해 소수당 출신인 존슨이 다수당의 횡포로부터 곤욕을 치른 경우로 해석하고 있다.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인 `지퍼게이트'로 1998년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나 상원 투표에서는 탄핵안이 부결됐다. 파라과이에서도 지난해 루이스 곤살레스 마치 대통령이 독직혐의로 탄핵안이 발의됐으나 상원의 표결에서 부결돼 겨우 위기를 넘겼다. 파라과이에서는 이에 앞서 1999년 3월 라울 쿠바스 대통령이 정정불안속에 상원의 탄핵재판이 개시되자 사임,국외망명한 사례도 있었다. 이밖에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불법 도박업자로부터의 뇌물수수 등각종 비리스캔들로 상원의 탄핵재판이 착수되자 2001년 1월 사임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은 2000년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절차가 시작되자 일본방문 도중 팩스로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페루 의회는 이후 그를 파면조치했다. 브라질에서는 1992년 10월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 대통령이 뇌물스캔들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180일간 권한정지라는 불명예를 안았으며 이후 12월 상원의탄핵절차가 개시되자 곧바로 사임했다. 상원은 그러나 그의 사임과 관계없이 탄핵안을 가결하고 8년간 공직을 갖지 못하도록 결의했다. 데 멜루는 그 후 검찰에 의해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만에서는 2000년 12월 야당인 국민당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 대해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결정에 반발, 탄핵안을 입법부에 제출했으나 표결까지 이르지는못했다. 당시 대만 정국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소수파인 천 총통이 다수당인 국민당의 심한 견제를 받았었다. 러시아에서는 1999년 5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대해 하원에서 체첸 전쟁과 국방력 약화, 소연방 해체 등 5가지 탄핵안으로 표결이 실시됐으나 부결됐다. (서울=연합뉴스) bo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