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이 들어오긴 했지만기업에 이 자금을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대선때 삼성.LG.SK.현대차 등 주요 그룹에서 수백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공모해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나라당 김영일.최돈웅 의원, 서정우 변호사, 이재현 전 재정국장 등 4명의 재판 과정에서는 `책임 떠넘기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이 당에 유입되긴 했으나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고 서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인사는 삼성.LG.SK.한화그룹에서의 불법자금수수 과정에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일 의원과 최돈웅 의원. 김 의원은 공판 과정에서 "당시 다른 중진들과 달리 최 의원만은 헌신적으로 모금활동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 의원이나 서정우 변호사가 4대그룹에서 돈받은 사실은 사후보고를 통해서 알았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불법 정치자금 모금을 사전에 지시한 적도 없고 사후에야 이를 알았기 때문에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최 의원은 SK그룹의 100억원 수수에 공모한 혐의만 인정하면서 나머지 혐의의 경우 "후원금 납부내역도 몰랐던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 모금에 나섰다는 김의원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김 의원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책임 떠넘기기식 태도는 대선전 63빌딩의 한 식당에서 한화 관계자를만나 40억원의 채권을 받은 대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의원은 "당시 식탁이 원형이었는데 한화 관계자가 최 의원에게 봉투를 전해줬다"고 주장한 반면 최 의원은 "봉투를 나와 김 의원 중간에 놓았는데 거리상 김의원 쪽에 가까워 김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았다"며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최 의원의 `자발성'을 강조하려는 듯 "이 전 총재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 반면 최 의원은 "친한 사이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모금 과정의 공모 관계를 부인하면서 자신은 기업에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삼성.LG.현대차에서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정우 변호사도 마찬가지. 서 변호사는 "기업이 `정치인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나를 통해 자금을 전달하겠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며 "김 의원이나 이재현 전 국장과 공모한 적은 없고 내가먼저 돈을 먼저 요구했다는 현대차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 전 국장 역시 정당의 재정담당 직원으로서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자금을 집행했을 뿐이라며 모금이나 집행과정을 주도하거나 범행을 범한다는 고의성이 미약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피고인이 법정에서 각기 어긋난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다른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은 진술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공히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상대방 진술이 자신의 주장과 다를 경우 증거능력에 대해 부동의한 뒤 상대방을 직접 법정에 불러 신문하는 통상적 수순에 비춰 이례적인 일로 서로 상반된주장으로 법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대신 재판부에 판단을 넘기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피고인들의 `책임 떠넘기기' 형국으로 재판이 전개되면서 정작 난감해 하는 것은 이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의 3개 재판부. 재판부의 한 관계자는 "다른 주장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아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런 상태라면 재판부 직권으로 증인을 신청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주장이 달라 사실관계 확정 및 양형시 재판부간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장.단점이 있겠지만 차라리 한 재판부에 사건을 모두 배당했다면 좀더 원활한 재판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