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일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사무라이영화 '자토이치'는 전통적인 시대극을 현대적으로 바꾼 작품이다. 사무라이영화가 개척한 표현양식들을 따르면서도 이 장르가 태생적으로 유희성 짙은 오락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는 귀족으로서의 무사가 아니라 밑바닥 세상에 사는 낭인검객들이 등장한다. 안마사이자 도박사인 맹인검객 자토이치,정체불명의 게이샤(기생) 자매,마을사람들을 협박하는 무사 긴조,그가 고용한 떠돌이 검객 등이다. 이들이 펼치는 활극에서는 사무라이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개척했던 표현방법과 비슷한 점들이 엿보인다. 빗속에서 벌어지는 결투신은 '7인의 사무라이'에,칼로 상대를 벤 자리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습은 '쓰바키 산주로'에 뿌리가 닿아 있다. 또한 사운드가 칼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팔다리가 뚝뚝 떨어져 나가는 잔혹함도 사무라이영화의 전통 중 하나다. 그러나 대다수 사무라이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중심에는 칼싸움이 아니라 인간들이 있다. 기타노 감독은 결투신에 '최대한의 심리전과 최소한의 싸움'이란 원칙을 적용했다. 주인공 자토이치는 적의 심리를 파악한 뒤 일격에 제압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정의 대신 각자의 사욕에 따라 움직인다. 서구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의 정통 서부극'이 아니라 '이탈리아 서부극'인 셈이다. 기타노 감독이 맡은 자토이치도 꼿꼿한 자세의 존 웨인보다는 꾸부정하게 걷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가깝다. 그는 전통적인 무사 가발을 벗고 짧은 머리에 금발로 염색했다. 또 적을 쓰러뜨린 뒤 폼나게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다른 검객들은 칼을 빼다가 실수로 옆동료의 팔을 베기도 한다.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태연자약하게 끼어들어 사극의 비장미를 제거하고 희극성과 대중성을 강화한다. 등장인물들의 어투와 행동,그들을 둘러싼 세트와 무대들도 시대를 무시하고 현대적으로 설정됐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일본 시대극에 관행적으로 등장하는 축제춤은 서구식이다. 게다를 신고 기모노를 입은 등장인물들이 아일랜드의 탭댄스를 춘다. 기타노 감독은 부조화스러운 설정을 통해 관객들이 진지함에 빠지지 말고 오락으로 영화를 즐기라고 주문한다. 3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