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한국인에게 아주 친숙한 17세기 서양화가 전시되고 있다.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피터 폴 루벤스(1577-1640)의 드로잉 작품 '조선남자'(한복 입은 남자)가 그것.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품 주인공은 '코레아'라는 성씨도그렇거니와 복장이나 생김새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조선인일 가능성을 풍긴다. 1979년 국내 한 일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슨 이탈리아 남부카탄차로 인근에 위치한 알비(Albi)라는 인구 1천 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 '코레아'라는 성씨가 거주하는 집성촌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신문은 이들의 조상이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을 거쳐 이탈리아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간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전했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한번 연기를 내기 시작한 '알비 코레아 성씨족=안토니오 코레아 후손'이라는 굴뚝은 이후 이를 더욱 부채질한 저널리즘과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누구나 의심하지 않은 '사실'로 굳어갔고, 급기야 '신화'의 불꽃을 피웠다.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주전공이 마키아벨리, 다른 관심사가 이탈리아 문화사라고 밝힌 서양사학자 곽차섭 교수(부산대 사학과)가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최근 선보인 「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200자 원고지 총 430장의 얇은 이 책에서 곽 교수가 내린 결론 중 하나를 우선보건대 제목의 시사처럼 "루벤스 주인공은 조선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미술사와 복식사 등의 힘을 빌렸다. 그 결과 저자는인물 생김새와 복장 및 모자 등이 조선인임을 강하게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림 배경에 등장하는 범선은 그가 내도인(來渡人)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 완성기는 루벤스가 로마에 머물던 1606-1608년 무렵으로 본다. 이를 따른다면 저 루벤스 작품의 주인공 '안토니오 코레아'는 400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셈이 된다. 그렇다면 알비 코레아 씨들이 안토니오 후손이라는 신화의 진실은 무엇일까? 곽 교수에 의하면 이는 신빙성이 제로 가깝다. 그들은 스페인인의 후손이거나그곳에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쿠리아' 성씨를 개명한 사람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절제되지 않은 민족주의 분위기에서 무책임한 신화가 확대 재생산을 거듭해 왔다". 푸른역사 刊. 160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