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카드 부실과가계 부실은 재경부의 정책 지배에 따라 관련 기관간 협력과 견제, 조정 과정이 생략된 데 따른 감독 실패의 결과라는 본격 연구보고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일찌기 2001년 초 가계 부실 위험을 감지하고도재경부의 내수 진작책에 눌려 문제를 방치하는 바람에 부실을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김홍범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작성한 「금융안정과 금융시스템 관련 공공기관의 역할」이라는 연구보고서(한은 금융경제연구원출간)에서 1999∼2003년 상반기 사이에 재경부와 금감위, 한은이 발표한 신용카드와가계 부채 관련 보도자료를 정밀 분석해 지금의 카드 부실을 초래한 원인과 책임 규명을 시도했다. 보고서는 "신용카드사 및 가계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과 연체율상승 등 지금의 여러 금융 불안 요인은 재경부의 정책 지배에 따라 공공기관간 협력과 견제, 조정 과정이 생략된 데 따른 감독 실패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카드 문제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서의 정책 대응 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해 책임소재를 가린 연구보고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금융 감독 당국과 한은은 2001년 초 각자 카드사 부실 및 가계 부채급증 등의 문제점을 인식했으나 재경부의 내수 진작 정책 기조에 눌려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고 금융사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채 1년여 동안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02년 상반기에 카드사와 가계 부채의 부실화 현상이 급속히 가시화.가속화하고 나서야 재경부는 그 해 5월 당정협의(신용카드 종합대책 추진)를 계기로내수 진작 기조를 실질적으로 포기했고 감독 당국의 본격 대처는 관련 법 개정을 거쳐 2002년 7월에야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하지만 문제가 상당히 증폭된 상태에서 규제가 뒤늦게 이루어짐으로써 2003년 3월에 불거진 SK 분식 회계 사건을 기폭제로 심각한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했고 이후 신용불량자 양산과 연체율의 대폭 상승이 지속되는 등 금융시장의 최대불안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재경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감위나 한은과 적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이들의 일상적 정책 운용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는 점"이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카드사 부실화, 가계 부채 급증, 신용불량자 양산, 연체율 상승, 부동산 과열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진작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감독 당국과 한은의 시각과 행동을 실질적으로 제한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재경부, 금감위, 한은간의 협력 및 견제 장치인 금융정책협의회가 아무런 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경부의 정책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또 "감독 당국이 신용카드사 문제를 처음 인지한 시기는 2001년 2월이었고 그 해 5월에는 '신용카드업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내놨으나 초기 대응이 건전성 감독보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영업 행위 감독에 초점을 맞췄고 이에 따라 개선 방안 이행이 1년 이상 지연됐다"며 금감위와 금감원의 책임을 거론했다. 보고서는 특히 감독 당국이 2002년 2월 신용카드와 가계 부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장단기 종합대책'을 내놓고도 가계 대출을 고도로규제하면 되레 경기 회복에 해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갈팡질팡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이어 "가계 부채 급증 등의 문제에 관한 한 한은은 다른 기관에 비해가장 정확하고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스스로 일관성을 잃어각 기관간 협력 및 견제를 통한 올바른 대응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여지가 거의없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은이 2001년 가계 부채 등의 문제에 대해 간간히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지만 강한 낙관적 입장을 내내 유지했고 2002년 상반기에는 일관적이지 못하고불분명한 자세를 견지했으며 2002년 5월 재경부가 내수 진작 정책기조를 포기한 이후에는 각종 통계와 분석에서 낙관적 시각이 자취를 감췄다"며 "이는 재경부의 정책관이 한은의 인식과 행동 반경에 실질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추정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감위(관료 조직)와 금감원(민간 조직)으로 이원화돼 있는 금융 감독 당국을 단일 민간 기구로 개편해 독립성과책임성을 확립하고 재경부와의 협력 및 견제 장치를 법률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주문했다. 이와 함께 "재경부가 금융 관련 법률 제.개정권을 보유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법적 권한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행사하되 금융시스템과 관련해 감독 당국 등의 일상적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감독 당국과 한은도 재경부를 정점으로 한 기존 위계에 순응하던 모습을 과감히 버려야 하며 독립적 공공기관으로서 각기 고유 업무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서로 협력.견제하되 자신의 정책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