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균형재정이라고 자랑하던 정부가 최근 들어 적자재정 편성 쪽으로 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5% 규모의 적자재정 편성을 권고한 이후, 경제부총리가 3조원정도의 예산증액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세계경제가 살아나고 수출이 증가했음에도,극심한 내수부진으로 우리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자재정이라도 편성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조바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경상지출 비중이 80%나 되는 재정구조의 특징상 재정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방위비 인건비 교부금 예비비와 같은 경직성 경비가 일반회계의 36%에 달하고 있어 적자재정 운용이 경기활성화로 이어지기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매년 상반기 조기집행과 하반기 추경 편성을 반복하면서 재정을 통한 경기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몇 가지 의문점을 갖게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조기집행 운운하는데,과연 조기집행이 경기회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검증이나 해봤는가? 매년 관행처럼 이뤄지는 추경편성의 경우,주로 경상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애당초 경기부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는가? 상반기 조기집행 후 하반기에 추경편성을 해버리면 조기집행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데,혹시라도 균형재정을 하겠다고 한 후 상반기 조기집행과 하반기 추경편성을 통해 실제로는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적자재정편성을 계속하는 이유가 지출확대를 통해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은 아닌가? 실효성 없는 적자재정 편성은 우리 경제를 오래기간 침체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일본처럼 말이다. 나라 빚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고 그 결과 오랫동안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재정수지 악화는 후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25년에 걸친 공적자금 상환계획에 따르면 외환위기에 책임이 없는 20대 이하가 44.4%의 상환부담을 지게 되는데 기존의 상환계획마저 무시한 채 적자재정을 편성할 경우 계획한 기간 내에 공적자금 상환이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후세대의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재정건전화도 이루고, 경기도 부양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재정운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재정정책의 초점이 재정의 건전성에 맞춰져야 한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중기재정운용 전략이 수립될 필요가 있으며,총선을 전후해 재정운용에 정치적 영향이 개입될 여지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경기부양 및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재정지출 증가보다는 현재의 재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즉 경상지출, 특히 경직성 경비를 줄이고 SOC, 과학기술 및 R&D, 교육, 환경부문 등에 대한 투자 등 경제의 기초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재정을 경제활성화 수단으로 삼으려면 통합재정관리를 통한 전문성과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반회계만 보고 있는 주먹구구식 재정운용은 더 이상 곤란하다. 내년 예산도 통합재정기준으로 보면 벌써 균형예산이 아니며, 더구나 국민연금 기금수입을 제외시키면 상당수준 이미 적자다. 아무리 여소야대라서 재정운용이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 신속히,그리고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는 매년 계속되는 조기집행 추경편성의 못된 버릇을 고칠 때가 됐다. 경기부양을 위해 적자편성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왜곡이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는 총선을 앞두고 우리 경제 내에 암울하게 덮어져 있는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투자도 살아나고 경제도 살아난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신뢰부터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회복은 정책의 일관성 유지로부터 출발돼야 할 것이다. cban@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