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정부는 22일 아르헨측이 민간 채권단에 갚아야 할 943억달러의 부채 가운데 75%를 탕감해 줄 것을 요구하며 여기서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밝혔다. 로베르토 라바냐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이날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에 참석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르헨티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민간금융기관에 대해 총 943억달러에 달하는 아르헨티나 채권 중 75%를 탕감해 줄 것을요구했다. 아르헨 정부가 민간 채권단에 탕감을 요구한 액수는 아르헨 국가 전체 부채액의약 53%에 해당한다고 라바냐 장관은 덧붙였다. 라바냐 장관은 또 민간 채권단에 대한 이 같은 제안은 내년 중반까지 타결짓기를 원하는 협상의 첫 작업이라면서, 그러나 민간 채권단에 진 부채 탕감 요구는 아르헨 정부의 "핵심 주장이자 중심축"이라면서 "절대 수정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또 기예르모 니엘센 아르헨티나 재무차관은 디폴트(대외채무 불이행) 직후인 2002년 1월부터 민간 채권단을 상대로 한 채무 재조정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시점의약 150억달러로 추산되는 이자 소득도 탕감을 요구한 부분에 포함된다며 지불하지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르헨 정부측은 민간 금융기관의 채권 75% 탕감을 위해 기존 채권을 대체해 새로운 종류의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채권자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새 채권은 3가지 종류인데 ▲액면가 자체가 줄어든 디스카운트 채권 ▲액면가는줄지 않거나 아니면 조금 줄어든 상태에서 지급만기일이 연장된 액면가(Par) 채권▲아르헨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연동해 기금 출자가 전제된 C채권 등이제시됐다. 새 채권은 또한 당초 발행된 것과 다른 화폐 단위로 표시할 수 있고 이에 따라채권자들이 원하는 국내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르헨 정부는 적용되는 화폐를 달러, 유로, 엔, 지수화된 페소 등 4가지 종류로 제한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디폴트 이후 발행된 채권을 비롯해, 아르헨 국내 연금생활자들이나은행예금자들이 현금 대신으로 받고 있는 국채(BODEN.보덴)에 대해서는 새 채권으로전환되지 않도록 예외조치를 두었다. 현재 아르헨에서 보덴은 현금과 마찬가지로 통용되며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등의 구매에 사용되고 있다. 아르헨 정부는 또한 현재 디폴트 상태에 있는 부채의 34.8%에 해당하는 채권액은 아르헨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민간 채권단 채무 재조정 협상의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간 금융기관은 일제히 불만을 표명했다. 일본 노무라 은행의 알렉산드르 베르거스 자산운용팀장은 아르헨 정부의 채무재조정 제안은 "한마디로 터무니 없는 것"이라면서, "일본인 채권자들을 대표하는사람으로서 75% 부채 감축이라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채권단 관계자도 아르헨 정부의 제안을 "매우 실망스럽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현실적인 지불 능력을 감안할 때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앞서 20일 IMF 이사회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3년 상환조건으로 125억달러에 달하는 대기성 차관 성격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세부안을 승인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번 IMF와의 장기협약 타결로 IMF를 비롯한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에 대한 각종 국제 차관 상환을 연기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으나,민간 금융기관에 지고있는 부채 재조정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