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문제로 촉발된 대법관 제청 파문과 관련, 지난 18일 전국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했던 현직 중견 부장판사 두명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견해를 내놓았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하광룡 부장판사는 19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전국 판사들과의 대화에 참석하고'라는 글을 게재,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이나 오도된 여론에휘말려 소신을 꺾는 것은 3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요 사법부의 권위를스스로 망가뜨리는 치욕적인 일"이라며 `제청 파문' 사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하 부장판사는 "시민단체나 소장 판사들의 목소리가 두려워 소신에 반하는 인물을 천거한다면 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며 "헌법이 보장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소신대로 행사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하 부장판사는 "온갖 세력들이 서로 빵 부스러기를 더 차지하기 위해 합법 비합법 과격 투쟁을 벌이는 때에 과격한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을 훈계해야 할 법관들이정권교체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민단체의 목소리 등 외부의 힘을 빌어 대법원 수뇌부를 흔들겠다는 발상은 사법부 수장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하 부장은 또 "대법원장이 헌법을 위반한 것도, 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청와대 주인이 바뀔 때마다 물러나야 하느냐"며 "이는 정권교체 등 법원 외부 사정이나환경에 편승해 사법부를 흔들려는 경솔한 생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지법 문흥수 부장판사는 이날 "지금의 대립은 보-혁 갈등이 아니라 '보신파'와 '소신파'의 갈등"이라며 "대법관 임명의 실질적 권한은 국회와 대통령에있는 것이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사이의 충돌은 재추천 등 과정을통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부장은 "궁극적으로 대법관 임명에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법관인사제도 개선위원회를 개혁적인 각계 각층 인사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확대개편해야하며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가 되고 판사들은 승진에 목을 매는 현행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며 "소장판사들이 한계를 느끼는 것 같은데 개혁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부장은 거취 문제와 관련, "8월말까지 헌법소원 결과를 보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 같다"며 "대법관 인사는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사법개혁 문제의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해 사퇴를 당분간 유보할 뜻을 비쳤다. 문 부장은 지난해 4월 "발탁 승진을 골자로 한 현행 법관 인사제도는 사법부 독립과 민주화를 가로막는 위헌적 제도"라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한편 박찬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법관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19일 내부통신망에 올린 `문흥수 부장께'라는 글에서 "94년 소장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에 따라탄생한 법관회의를 이용, 대법원이 사태를 수습했다"며 ▲ 보.혁갈등,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분열책동에 휘말리지 말 것 ▲ 대법원의 권위가 실추되지 않도록 법관들이 노력할 것 ▲ 소장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를 묵살시키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박 부장은 "문 부장이 제 의견을 구하고 답신할 시간도 없이 기자회견을 통해조건부 사퇴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말리지 못하고 그저 사태의 추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며 "문 부장이 조금 진중하고 옆의 의견도 듣고 앞뒤도 돌아보며 하늘의소리에도 귀기울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