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하투(여름투쟁) 핵심목표인 '산별노조의 조직력 강화 전략'이 사실상 무산됐다. 민노총의 최대 세력인 현대자동차 노조(조합원 3만8천여명) 집행부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산별전환(금속연맹노조 가입)이 현장 조합원들의 투표에 의해 거부돼 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합원들의 산별전환 '비토'에는 두 가지 배경이 깔려 있다. '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인 이슈에 매달리는 집행부에 식상했다' '현대차와 같은 풍족한 노조가 수많은 중소기업 노조들과 공동보조를 취해 봐야 현실적으로 득이 될게 없다' 노동전문가들은 현대차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노동운동이 대기업노조 중심에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하청 근로자 문제로 전략초점이 옮겨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 노조원들의 반란 =지난 87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조합원 3만8천명의 현대차 노조는 자연스럽게 노동계를 대표하는 노조로 성장해 왔다. 해마다 임단협 기간만 되면 회사 내부 사정과는 관계없이 노동계의 정치이슈를 내걸고 파업을 일으켜 민주노총 최대 핵심세력으로 군림해 왔다. 노정 대리전의 리더를 자임하면서 월드컵 때도 파업을 강행하는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해마다 수천억원의 손실을 회사에 입히면서도 연말에는 1인당 1천만원에서 2천여만원의 파업 상여금(?)을 타가는 노조의 이율배반적 행위에 대해 '귀족노조'라는 따가운 여론의 시선이 고조됐고 조합원들 스스로도 깊은 자책과 반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올들어 현대차가 극심한 내수부진에 휩싸인 가운데도 여전히 노조가 정치이슈를 노걸고 노정대리전에 나서면서 조합원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부터 제동을 걸었고 아예 산별전환투표는 부결시켜 버리는 노조설립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 현대차 노조의 변화 =이번 투표결과를 놓고 일각에선 노노갈등의 표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 등 사실상 조합원들의 권익과는 거리가 먼 정치이슈화와 릴레이 파업에 대해 조합원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을 일찍이 의식한 일부 현장조직에서 집행부를 흔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헌구 노조위원장 스스로도 최근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에 대해 "조합원들의 '변화 바람'을 미리 헤아리고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현장 조합원들은 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면서 정치이슈에 매달리는 집행부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 왔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부결사태는 현대차 노조가 강성에서 온건 노조로 전환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 노조가 맹목적 명분에 매달리는 정치투쟁보다는 조합원들의 권익보호와 회사발전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실리주의 노선을 걷게 될 경우 대기업 노조가 주도해온 민주노총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쳐 노동계 판도가 다시 짜여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그동안 대기업 강성노조가 주도해온 노동운동을 하청 중소업체와 비정규직들이 대신하는 '아래서 위'로 격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