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온 관심이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일행 일언에 쏟아지고 있다. 당연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스타다. '스타 탄생'1백일이 돼가니,이 스타가 어떤 스타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사회 심리다. 문제는 이런 스타 현상 속에서도 이른바 별 재미없는,그러나 묵묵히 수행돼야 할 국정(國政)이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과도기적 적응 단계'라고 청와대에서 강변해도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당장 경제지표 경기지표가 그렇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사회갈등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각계의 강한 주장에 편나누기 편들기로 보이는 것은 공연히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일 것이다. 하나하나 사안으로 보면 별 것 아닌 듯 싶지만,연거푸 일어나니 혼란스럽고 더 커질 듯 싶어 불안하다. 다른 어떤 갈등보다도 정서적 갈등에 근거한 힘 겨루기가 사회 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 확연해지는 시대다. 더욱 큰 우려는,정서적 갈등은 다른 어떤 갈등보다도 풀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해결 방안이 다른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두말할 것 없이 대승적 국익의 관점에서 합리적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일정하게 적용한다면 국민들과 이해집단들은 이윽고 설득될 수 있다. 이럴 때,악역을 맡아주는 2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정이란 인기 못얻을 사안이 태반이지 않은가. 아무리 매를 맞더라도 악역을 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그런 악역을 대통령에게 맡으라는 것도,대통령이 맡겠다고 나서는 것도 결국 좋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맡을 것인가. 우리나라 대통령제에서 중요한 2인자라면 여당 대표,청와대 비서실 대표,그리고 국무총리일 것이다. 여간 저간한 정치적 사정으로 여당의 대표성이 확실치 않고,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총괄조정 기능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셈이니,그나마 제도적으로 살아남은 역할이라면 유일하게 국무총리다. 총리가 악역을 맡을 때다. 고건 총리는 이른바 '행정의 달인'이라는 명예 호칭을 두르고,참여정부의 책임총리 받침대총리 속도조율총리 안정총리가 되겠다고 등장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대다수 국민들은 의아해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제는 '악역 총리'를 기대해 볼 만하다. 고건 총리는 정치 실세가 아니기에 오히려 악역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지세력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정치 생명에 연연해야 하는 입장도 아닐 것이다. 욕을 먹어도 큰 상관이 없는,사실은 구체적으로 욕을 먹고 충돌을 감수하면서 일을 해도 크게 문제가 안되는 초대 총리다. 악역은 무엇일까. 될 것과 안될 것,지킬 것과 바꿀 것,타협할 것과 조정할 것을 어떤 원칙에 의해서 정하느냐에 대해 당당하게 밝히고,필요한 설득 작업을 전방위로 펼치는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모든 이해집단을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없으니 말이다. 2인자란 1인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입장에 있다. 고독감과 중압감은 1인자보다 덜할 지 모르지만 발로 뛰는 일은 더 많고,모든 사람들이 1인자를 직접 대하려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를 줏대있게 대국적인 견지에서 만들어가야 하는,결코 쉽지 않은 입장이다. 그렇기에 역량있고 열정적인 2인자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건축분야를 비유해 보자.개념과 비전을 만드는 '디자인 아키텍트' 옆에는 꼭 '프로젝트 아키텍트'가 있다. 비용 조절,인력 조정,기간 조정,고객 설득을 맡는 역할이다. 한마디로 악역이다. 디자인 아키텍트에게 설계 조정,재료 교체,디테일 정리를 강권하기도 한다. 이 밉상인 역할 때문에 논쟁과 얼굴 붉히는 싸움도 있지만,실력있는 디자인 아키텍트는 프로젝트 아키텍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고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역의 2인자 역할을 고건 총리에게 기대해 본다. 디자인 아키텍트로서 대통령의 1인자적 비전을 기대하는 것도 물론이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