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유물 약탈범들은 소장품 보관창고 열쇠를 갖고 있었을 만큼 잘 조직된 전문가들로 해외에서 원정왔을 가능성이 높으며 약탈된 보물들이 이미 프랑스와 이란 등지의 암시장에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이라크 국립 박물관과 국립 도서관이 지난 수일간 약탈범들과 방화범들에 의해 껍데기만 남은 가운데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미술품 전문가들과 역사가 들은 파리에서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시카고 대학 교수이자 바그다드에 있는 미국연구협회 회장인 매과이어 깁슨은 "일부 약탈 행위는 매우 정교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이는 정말로 전문적인 솜씨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동지역의 가장 귀중한 고고학 유물 보관시설인 바그다드 국립 박물관 등 여러 유물들이 미군의 방치 속에 약탈된 데 항의해 미국의 문화재 전문위원 3명이 사임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약탈 품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기록조차 잿더미로 변하고 이라크 당국자와의 접촉도 차단된 상황에서 이같은 의문이 풀리는 데는 여러 달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약탈의 대부분은 마구잡이로 이루어 졌지만 일부 범행은 매우 조직적으로 진행돼 범인들이 원하는 보물이 무엇인지, 이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깁슨 교수는 "이들은 어디선가 보관창고의 열쇠를 입수해 최고로 엄선된 보물들을 훔쳐갔다. 이들은 해외에서 온 전문조직이라는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약탈된 유물들이 고도로 조직된 유물 거래조직에 흡수돼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의 수집가(콜렉터)들에게 납품하는 중개상들에게 넘어갔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깁슨 교수는 일부 유물들이 벌써 파리와 이란, 또 `유럽 기타 지역'에 나타났다는 미확인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영국박물관의 닐 맥그리거 관장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아시리아 왕조 시대 왕비들의 보석 등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일부 고대 유물들은 이라크 국립은행 보관창고로 옮겨 졌으나 이들이 아직도 그 곳에 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약탈범들은 국립 박물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를 말해주는 바빌론과 수메르, 아시리아 시대의 진귀한 보물들을 마구 훔쳐갔다. 원래의 서가째 고스란히 보존된 `시파르 서고(書庫)'를 포함, 10만년이 넘는 고대 설형문자 도판(陶板)도 이번에 도난당했거나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 일간 워싱턴 포스트가 18일 보도했다. 1986년에 발견된 `시파르 서고'는 기원 전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약 800개의도판들로 찬가와 기도문, 서사시, 사전, 천문학 기술(記述), 대홍수의 기록, 함무라비 법전 서문 등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을 담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이라크 유물 관리 당국은 전쟁 전 전국에 있던 유물들을 수집해 폭격맞지 않을국립 박물관으로 옮겨 놓았으나 약탈범들의 손에 털릴 것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같다고 깁슨 교수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류 최고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이 약탈품에 포함되는 지 여부는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찰과 박물관, 세관 등이 보물의 불법 유통을 막을수 있도록 모든 유물의 데이터 베이스가 신속하게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의 고대 유물을 노리는 문화재 불법 유통조직들은 걸프전 이후 생활고에시달리는 빈민들을 이용해 번창하고 있으나 당국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미국은 20여명의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이라크에 파견, 도난된 유물 회수작업에 들어갔으며 유물 전문가들과 학예관, 사직당국이 유물 추적 및 추가 약탈 방지에 나섰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라크 유물의 유통을 잠정 중단하는 유엔 결의를 촉구하면서 유물 관리를 전담할 미.영 동맹국 `역사유산 경찰'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파리 A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