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작가 박범신씨가 소설가로 등단한지 30년만에 첫 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이 머문다」(문학동네刊)를 펴냈다. "절을 떠나니 편안해졌다 편안하니 부처가 중심으로/들어왔다 한밤중 홀로 거울을 보니 내 사랑 이제 환하구나"('절필' 전문)처럼 1993년 절필선언 후 경기도 용인에 마련한 '한터산방'에 칩거하며 주로 썼던 시편들을 시집으로 엮어냈다. 저자는 '시인'이라는 시에서 "내가 만약 시를 쓴다면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비내리는 저녁이 오면 그리운 그대에게 가서 모시식탁보 깔린 정결한 식탁 위 가시 많은 생선으로 내가 눕는다, 라고"라면서 "남몰래 한밤이면 갑옷을 벗고 새우등으로눕는 뼛속 빈 남자를 나는 알고 있다"고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는 서문에서도 "나의 '시인'은 전사의 갑옷에 횡경막이 눌려 오랫동안 숨도제대로 못 쉬고 지냈다"면서 "더도 말고 오늘 하루, 나의 '시인'이 갑옷을 뚫고 나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얼쑤얼쑤 춤 한 번 추고 가는 것을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적었다. 저자는 "봄날 온 산천에/종환(腫患)들이 떼지어 솟아/터진다/피고름이 터진다/무섭다"('꽃' 전문), "내 몸의 살 다 썩히고 나면 봄꽃바람/내 젖은 갈비뼈 사이로환하게 흘러가겠지/그러면 비로소 사랑도 눈꽃처럼 가벼이 떠오를까"('봄의 예감이넘치는 어느 날 아침 햇빛 밝은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전문), "산벚꽃 반쯤지고/산마을 한 뼘쯤 가라앉으면/햇빛 사이/딱딱딱딱 딱따구리/소리 가는 길로/내혼이 가는구나"('4월' 전문) 등 강렬하게 압축된 짧은 시들을 통해 우주와 교감하는영혼의 움직임을 잘 드러내 보인다. '불의 나라'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흰 소가 끄는 수레' 등 자신의 소설제목과 같은 시들도 실려 있다. 120쪽. 6천500원. 장편 「더러운 책상」(문학동네刊)은 열여섯살 소년이 예술혼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문학평론가 류보선(군산대 교수)씨는 "「더러운 책상」은 하나의 위대한 예술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예술의 기원에 대한 소설이며 동시에 우리시대 문학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368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