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후세인 체제'의 대리인은 누구인가. 이라크전 개전 22일째인 10일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사실상 완전 장악, 전쟁이 예상대로 미영의 승리로 끝나면서 포스트-후세인 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그다드의 대통령궁 폭격 당시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그의 두 아들이 폭사한것으로 한때 알려졌으나 `사망'이 검증되지 않은데다 후세인 일가가 바그다드주재러시아대사관에 피신, 망명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일단 건재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편이다. 그러나 후세인의 생존이 확인되고 공화국수비대의 간헐적인 저항이 있더라도 미영군의 바그다드 함락과 이라크 전 국토의 90% 이상을 점령한 이상 재기는 불가능할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침공의 주축국인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저항과 분열을막기 위해 빠른 시일내 과도체제 수립을 통한 `체제 안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역시 유엔 주도하의 과도체제 수립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목적이 누가 봐도 미국의 석유자원 확보와 이스라엘 이익보호에 치중한 중동질서재편에 있었던 만큼 미국은 일정기간 `군정'을 거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라크출신대리인을 과도체제의 지도자로 내세울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그동안 후세인 정부에 반기를 든 채 해외에서 `망명정부'를 꾸려왔던 반체제 단체가 10개 가량에 이르는데다 단체들마다 미국과 영국 등을 후원세력으로 업고 있는 것으로 대외선전에 나서면서 미국의 선택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런던을 근거지로 활동중인 이라크 국민회의(INC) 소속 시아파인 아흐마드찰라비(58)가 현재 가장 유력한 과도정부 수반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구질구질한 그의 전력과 변변치 못한 이라크내 지명도를 볼 때 그가 지도자로 나설 경우 큰 반발이 예상된다. 어린 시절인 1950년대말 가족과 함께 이라크를 떠나 망명길에 오른 찰라비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런던에 거주하며 INC를 운영해왔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90년대초 INC 대표 자격으로 그에게 6∼7천만달러의 `반체제 공작자금'을 제공했으나 이 돈중 상당액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CIA와 사이가 벌어졌다. 그는 또 비슷한 시기 요르단에서 저지른 금융사기로 수억달러를 챙긴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징역 2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승용차 트렁크에몸을 숨긴 채 요르단을 탈출, 시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도주했다. 최근 `근본주의의 충돌'이라는 저서를 낸 파키스탄 출신의 타리크 알리는 그를`늙은 사기꾼'에 비유하며 "찰라비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자유화' 이후 민영화 절차를 거쳐 이라크 석유를 미국 회사에 넘기겠다는 것과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개혁'을 천명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찰라비는 미영군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 국방부의 지원아래 이라크 남부에 `자유 이라크군'을 급조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그에 대한 미 국무부와 CIA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장기 망명생활로 이라크 국민 사이에서 그의 인지도가 극히 낮은데다 부정과 치부로 점철된 그의 과거가 동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라비는 미영군이 바그다드를 장악하던 지난 9일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의 군중집회를 통해 "법치와 민주주의, 인권존중의 이라크 사회를 건설하겠다"며 이라크 민심을 얻기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찰라비와 더불어 유력한 임정수반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라크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의 모하마드 바크로 알-카심. 1982년 설립된 이 단체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 본부를, 영국 런던에 지부를 두고8천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조직원들은 이라크 이슬람 교도의 약 60%를 차지하는 시아파 망명인사들이다. 알-카심 역시 미국 정부의 자금지원 아래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라크 남부지역을 상대로 반후세인 활동을 벌여왔으나 그 역시 낮은 지명도에다 불투명한 자금운용 등으로 조직내에서까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미 CIA는 알-카심을 찰라비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밖에 이라크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쿠르드 애국동맹과 이 단체와 경쟁관계에 있으면서 후세인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쿠르드 민주당등도 과도체제안에서 어떡하든 `일정 몫'을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고위관리 출신 망명자인 아야드 알라위의 주도로 1990년 창설된 이라크민족화합도 제 목소리에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라크 군부와 정보기관 출신 망명자들이 주요 구성원인 이 단체는 조직원들의 출신 부서를 중심으로 이라크내 정보망을 운영하면서 미 CIA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암만과 런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단체는 그러나 소규모 인원을 중심으로 한 `비밀공작'의 특성때문에 다른 단체에 비해 공개적인 반체제 활동이 없는편이어서 지명도가 역시 낮다. 이들중 어느 단체의 누가 과도체제를 이끈다해도 미국의 `이라크 자유' 이후 민주화 과정이 순탄치 못해 정정불안이 지속될 경우 이라크는 물론 중동지역은 심각한전쟁 후유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성기준기자 bigpen@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