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시계 업체인 스와치 그룹의 니콜라스 헤이에크 회장(74)이 지난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 조지 니콜라스(48)가 CEO직을 이어받았다. 이에 따라 세계 명품업계의 관심은 과연 후계자 니콜라스 주니어가 부친이 이룬 "시계 제국"의 아성을 지킬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스와치는 스위스(Swiss)와 시계를 뜻하는 영어의 와치(Watch)를 합쳐 축약한 단어로 일반적으로 널리 알져진 중저가 브랜드인 동시에 세계 최대 명품 시계 업체의 기업명이기도 하다. 스와치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로는 캐주얼 패션 시계 스와치 외에도 17개나 된다. 그 중에는 오메가,론진(Longines),블랑팽(Blancpain),브르게(Breguet) 등 최고 명품 브랜드가 여러 개 있다. 스와치를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만든 헤이에크 회장은 레바논 출신이지만 스위스 산업계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그는 70년대 말 일본과 홍콩 업체들의 도전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 스위스 시계산업을 부활시키며 명성을 떨친 산업 영웅이다. 스와치 그룹은 최근 2002년도 매출이 전년도에 비해 2.9% 감소한 40억6천만 스위스 프랑(30억 달러)이라고 발표했다. 스와치는 스위스 프랑화 강세와 전반적인 세계경제 침체를 매출 감소의 요인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명품 시계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불과 몇해전만 해도 스와치 그룹의 경쟁 업체는 까르티에와 피아제를 만드는 리치몬트 그룹과 롤렉스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LVMH 그룹과 PPR 등 프랑스 대기업들이 고급 시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보석 브랜드 쇼메와 에벨을 인수한 LVMH는 3년만에 5억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PPR 역시 보석업체 부쉐론과 유명 시계 브랜드 베다를 인수한 뒤 구치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명품 시계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스와치 그룹은 지난해 계열사이자 세계 최고의 정밀기계 업체인 ETA로 하여금 2006년부터 경쟁 브랜드 업체와 거래를 중단토록 지시했다. 경쟁업체에 부속품 공급을 끊음으로서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 스위스 공정거래위원회는 스와치가 독점적 위치를 악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경쟁 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스와치 그룹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바뀌었다. 시계 제국의 왕좌를 이어받은 니콜라스 주니어는 외부의 도전을 물리쳐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에겐 부친의 화려한 명성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그가 아직은 혼자서 제국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헤이에크 회장은 평소 "은퇴란 패자들의 변명"이라며 "모차르트와 피카소의 사전에는 은퇴란 단어가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인생관으로 미뤄볼 때 그는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명품 시계 왕국의 군주로 계속 군림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강혜구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