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갑자기' 전통을 생각하게 된다. 설빔으로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텔레비전에서는 으레 고궁과 민속촌에서 널뛰기 제기차기 하는 모습을 담아 내보낸다. 그리고 하는 말마다 '아름다운 전통''조상님들'이라는 관형어가 따라 붙는다. 그러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전통 타령이 나를 항시 괴롭게 만든다. 누구보다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쯤으로 비쳐져 있을 나이지만,나 자신은 그런 식의 전통 사랑은 거의 경멸하고 있다. 어쩌다 때가 되면 한번 생각하는 전통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복의 경우,설날이 아니라 평소에 입고 다니는 문화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이런 뜻에서 요즘 개량한복이라는 것이 여러 형태로 나왔지만,아직 내가 기분 좋게 사 입을 디자인은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것도 아니고,현대적인 것도 아닌 묘한 느낌과 거부감까지 줄 따름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전통문화가 서구화의 물결에 밀리면서 한복은 양복에 그 자리를 그대로 이양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복이 양복에 밀리면서 한때 떠돌던 자조적인 얘기가 있었다. '세상이 변해 여자한복은 기생집에 가야 보고,남자한복은 교도소에 가야 입는구나'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한복이 현대인의 삶에 맞게 점차 개조해 왔다면 우리는 분명 21세기에 맞는 한복을 갖고 있을 것이다. 1백년 전,개화기 때 우리의 어른들은 한복을 일상적 필요 속에서 개조했던 흔적이 있다. '만세보'편집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위창 오세창 선생의 두루마기엔 옷고름 대신 넓적한 단추가 달려 있다. 걸리적거리는 옷고름을 따버리고 편안히 앉아 신문 교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 개화바람을 타고 있던 목사,문인들의 두루마기는 이런 식으로 개조돼 있었다. 남자한복은 허리띠와 지퍼를 과감히 도입해서 불편없고 실용적으로 개조해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전통이 '무서워' 그런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고,결국 남자한복은 옛 전통 유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안동에 갔다가 한 종갓집 제사 얘기를 듣고 무릎을 치며 감동한 적이 있다. 내로라 하는 종가는 4대 봉사에 불천위제사까지 최소 12번의 제사가 있고,한창 때는 2백∼3백명이 참가했단다. 그런데 후손들이 외지로 나가 살면서,적을 때는 30명 정도가 제사를 지내기에 이르러,한 종가는 과감히 제삿날을 토요일밤에 지내는 것으로 룰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시 제삿날이면 1백∼1백50명으로 늘어났고,모두들 종손의 과감한 조치를 환영했다고 한다. 제사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개혁한 것이다. 제사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사음식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품목이 전이다. 각종 전을 부치려면 일손이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패스트 푸드가 없던 시절 그 역할을 한 전이지만,오늘날은 누가 그 전을 맛있게 먹는 것은 아니다. 일찍 부쳐놓고 제사 끝나자마자 찌개 속에 확 부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어느 집에서는 제사상에 전 대신 피자를 올려놓고 있단다. 그러자 제사를 귀찮아 하던 어린 손자들이 제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복 두루마기를 바바리코트 대신 입으면 안될까 생각해 보곤 한다. 면바지에 코르덴 상의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으면 멋있어 보일까,갓쓰고 자전거 타는 꼴불견이 될까,아직은 자신이 없어 마음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과감한 전통개조야말로 전통을 지키는 슬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조되지 않는 전통은 인습이지 전통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민속학에서 말하기를,전통에는 두가지 특성이 있으니 하나는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 원칙에 입각하건대 우리는 전통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바꾸는 것에도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은 전통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다. 전통을 진정 사랑하고 그것의 존재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자만이 자신 있게 그것을 개혁할 수 있다. 인습적으로 따라가는 자는 개조란 상상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자신 있는 자는 전통을 바꿀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