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형제자매가 돈을 모아 지은 시골집이 가압류 돼 영농자금 상환연기도 안되고 명절이 되도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이전 문제로 지난 2001년 7월23일부터 파업을 벌여온 S사 노조원 김모(35.여)씨는 설이 다가와도 한숨만 나온다고 털어놨다. 사직요구를 거부하자 회사측이 신원보증인인 전북 장수에 있는 친정오빠의 집에 대해 1억원의 가압류를 해놓는 바람에 영농자금 대출금 상환을 연기할 수도 없고 추가 대출도 어려워졌다. 더 서글픈 것은 친정오빠가 "회사생활 계속하려면 전화도 하지 말라"며 인연을 끊었고, 시골 마을에서는 "서울의 여동생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소문이 퍼져 얼굴조차 내밀 수 없게 된 점이다. 김씨처럼 노조측의 불법파업에 맞서 사측이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이나 가압류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늘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사측이 노조측에 가한 손배.가압류 액수는 모두 50개 사업장 2천223억원으로 지난해 6월말 39개 사업장 1천264억원에서 6개월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노동부 통계에서도 지난 2000년이후 지난해 10월까지 파업 등 노조활동과 관련해 청구된 손배 액수는 58개 업체 535억여원, 가압류 액수는 44개 업체 1천76억여원등 모두 1천61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배.가압류는 그동안 청구대상이 조합비와 노조원 임금 등으로 한정됐었으나 최근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퇴직 이후에도 지속되는 등 노조원들 사이에 '신종 노동탄압'으로 통한다. 장은증권의 경우 노조위원장의 부친과 숙부, 조모의 집 뿐만 아니라 선산에까지 손배 및 가압류를 했으며, 동광주병원은 조합원의 가족인 보증인 47명의 부동산에 대해 14억원의 가압류를 했다. 제주한라병원은 조합원 6명의 보증인에 대해 과수원 등 재산과 부동산을 가압류했으며, 조합원 분신사망 사건을 낳은 두산중공업의 경우 손배.가압류 액수가 78억원에 달한다. 경총 관계자는 "과거 노조측이 불법 파업을 벌이더라도 막바지 노사 협상에서 파업을 푸는 조건으로 노조측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을 사측이 받아들이는 것이 관례였으나 최근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한다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사측이 손배.가압류 해제를 미끼로 노조탈퇴를 유도하거나 선별 적용하는 등 손배.가압류를 노조 무력화 방편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현행 노동관계법에는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중대한 문제라도 회사 경영에 관련된 것이면 정당한 목적의 쟁의로 인정받지 못하고 절차에서도 필수공익사업장은 사실상 합법쟁의를 할 수 없다"며 "이 경우엔 불법행위가 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당하게 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따라서 ▲불법파업의 빌미가 되는 직권중재조항 등 악법조항 철폐 ▲민형사상 면책범위의 확대와 업무방해죄 적용의 제한 ▲손배 등의 대상을 노동조합으로, 범위를 명백한 폭력이나 기물파손 등으로 직접적 피해를 입힌 경우로 한정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52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통합과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 사용주들은 지난 5년간 제기한 손배.가압류를 모두 취소하고 정치권은 부당한 손배.가압류를 막을 수 있는 법제도 개선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한기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