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핵시설에 설치된 봉인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핵 동결 해제를 위한 1단계 조치가 완료됐다. 북한핵 감시체제가 완전히 무력화된 셈이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대북 설득에서 압박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 장관은 "(이라크와 북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 북핵 위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국제사회 강경 선회 =북한이 핵연료 생산시설 봉인을 제거한 것은 원자로를 가동하기 위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자로 가동으로 인해 폐연료가 발생하고 이를 재처리하는 방사화학 실험실 봉인이 제거돼 문제가 복잡해졌다. 수개월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추출될 수 있다는데 대해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5㎿ 원자로의 봉인을 제거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미국을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의 봉인까지 제거하자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두 개 전선의 승리'를 거론한데 이어 북한이 대담해질 경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북한에 대해 당장 군사적인 행동에 들어간다기보다는 경고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미국이 사태 진전에 따라 외교적 움직임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내달 6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북한의 핵동결해제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IAEA는 대북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유엔 안보리에 북핵 문제를 상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럴 경우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며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된다. ◆ 북한 어디까지 가나 =북한이 쓸 수 있는 다음 조치는 △폐연료봉을 꺼내 방사화학실험실에서 플루토늄 추출을 실행에 옮기는 것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및 핵 사찰관 추방 △50㎿.2백㎿ 원자로 건설 재개 등의 수순이다. 핵개발을 생존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북한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무릅쓰고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등의 핵무기 개발 단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협상에 나오지 않을 경우 전력 생산을 위한 원자로 가동이나 NPT 탈퇴 선언 등을 통해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부당국자는 "북한이 예상 밖으로 강수를 두고 있어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 < 북 핵동결 해제선언 이후 일지 > 12월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핵동결 해제 선언 13일(미국시간 12일) =미 백악관 대변인 '미국 대화 않는다' 성명 발표. 한.미 정상 전화통화 19일 =16대 대통령 선거 21일 =북 영변 5MW 원자로 봉인 제거. 미 원상복구 촉구 성명 22일 = 북 영변 폐연료봉 저장시설 봉인 제거 23일 =북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봉인 제거 착수 24일(미국시간 23일) =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이라크.북한 동시전쟁수행 가능성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