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하원의 이라크 결의안 의결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제부터 독자적으로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서 받아왔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국내외 장애물 가운데 국내의 장애물을 넘어선 셈이다. 앞으로 남은 국외의 장애물은 미국의 의도를 반영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결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국내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삼아 앞으로는 새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부시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즉각 무장을 해제하든지 아니면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중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하는데 이제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결정하기 전 유엔 결의의 형태로 군사공격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하한 형태로든 유엔의 결의를 얻어내야 미국의 독주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도는 그리 밝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등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상임이사국은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유엔이 자동적으로 군사행동에 나서는 데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특히 프랑스는 안보리가 이라크 무기사찰을 위한 걍력한 새 결의안을 채택한 뒤 이라크가 협조하지 않으면 무력사용을 하는 이른바 '제2단계 결의' 방안을 내놓았다.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직 이라크를 공격할 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의회 결의안이 의결됐다고 해도 미국이 곧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결정한다해도 공격을 준비하는데만 몇달이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의회는 부시 대통령에게 사실상 폭넓은 권한을 부여했다. 의회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만을 붙였다. 이 같은 권한은 의회가 1964년 베트남전을 수행하기 위해 의결한 통킹만 결의 이후 대통령에게 부여한 전쟁 수행 권한 중 가장 광범위하고 유연하다. 의회의 이라크 결의안은 미국의 외교정책면에서도 주목할만 하다. 미국 행정부는 그 동안 테러방지와 이를 위해 선제 군사공격도 감행한다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냉전식 대결에서 테러방지로 외교 정책의 방향을 선회했다는 의미다. 이번 의회 결의는 행정부의 이런 정책을 의회가 뒷받침한다는 중요한 의미도 지닌다. 민주당은 그 동안 부시 대통령에게 포괄적이고 임의적인 전쟁수행권을 주는 결의안을 반대하다 최근 결의안 통과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은 추가 테러 등이발생할 경우 부시 대통령의 조치를 제한했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 그 뿐만이아니다. 중간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라크 결의안을 신속히 처리한 뒤 경제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편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 의결을 얻어냈지만 남은 과제도 있다. 상원에서는 결의안통과를 둘러싸고 민주당 내 이견이 첨예하게 나타났다. 상원 민주당 의원 중 29명이결의안에 찬성한 반면 21명이 결의안 통과에 반대했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의회뿐만 아니라 국내의 반대여론을 무마해야 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국내의 장애물을 넘어섬으로써 유엔 결의안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단독으로 또는 영국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딕 게파트(민주)하원의원의 지적처럼 '다른 나라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지지를 얻어냈지만 단독 군사행동에는 신중을 기한다고 이곳 관측통들은전망한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대영 특파원 k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