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언제 우리나라에 이렇게 축구광이 많았을까 싶을 정도로 경기장은 물론 전국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는 수십만명의 축구팬들이 운집하고 있다. 이런 핵폭풍을 몰고 온 중심에는 축구애호인 모임인 '붉은 악마'가 있다. 지난 97년 수백명으로 출범한 붉은 악마는 현재 20만명 이상으로 회원수가 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들 뿐 아니라 전국민이 준회원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소수의 열정이 전 국민이 동참하는 응원의 발전소가 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열광하게 하고 하나로 묶었을까. 이는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열광하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붉은 악마를 통해 평소 '억눌려 있던 자아'를 표출하려는 일종의 '집단 최면' 또는'집단 히스테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최면이나 히스테리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가슴속 깊이 묻혀있던 뜨거운 용암이 드디어 분출구를 찾은 것이다. 단순하지만 힘찬 응원 구호,반복되는 박수 소리와 웅장한 북소리는 집단을 쉽게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최면이란 모든 관심이 오직 한 곳에만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응원의 현장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헤치고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과 일체감 속에서 건강하게 자신을 발산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과 공격적인 충동 조차도 이를 통해 건강하게 승화된다. 10∼20대의 젊은이들 뿐만 아니다. 30∼40대 직장인은 물론 축구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주부들까지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열띤 응원을 벌이고 있다.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암울했던 80년대와 IMF의 충격 속에 시달렸던 세대들에게 정신적인 해방감과 후련함을 느끼게 하는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전국민의 열광적 응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건강한 놀이문화가 없었던 것임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우리 국민은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도 없었다. 휴식을 모르는 한국인을 '일벌레'라고 비아냥거리는 외국인들의 말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우리다. 그러니 제대로 된 놀이 문화가 발달되었을 리가 없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과정은 생략한채 결과만을 중요시 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축제로 생각하고 경기 자체의 재미를 즐기기 보다는 숨죽인채 결과만을 기다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축제 한마당과 같이 함께 모여서 과정 자체를 즐기는,좀 더 건강한 놀이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붉은 악마의 에너지는 또 건강하고 절제된 애국심으로 발산되고 있다. 붉은 악마는 한국선수의 응원에 의의를 두고 있지 이를 배타적이거나 편향적인 애국주의로 연결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또 후광효과를 노려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이나 지극히 상업적으로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기업 스폰서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이 스포츠를 정치수단으로 이용했고 독일의 국수주의적 젊은이들인 '스킨헤드'가 유색인종에게 크고 작은 테러를 가한 것과 차별화되고 있다. 붉은 악마는 열띤 응원과 함께 경기가 끝난후 경기장을 치우는 등 모범적인 관전문화도 보여줬다. 이는 남을 의식하는 뿌리 깊은 한국인의 병적 체면이나 신경증적인 배려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건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성숙한 문화다. 붉은 물결을 보며 힘과 용기가 생기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역동적인 나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부정부패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화합의 구심점을 찾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