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은행(IBRD)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IBRD의 정책결정이나 총재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여서 IBRD의 미국 비판이 공개적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주로 익명으로 이뤄진다.


익명의 비판은 한때 최빈국에 대한 지원방식을 놓고 높아졌다.


미국이 무상지원을 주장한 반면,IBRD는 책임있는 개혁과 시장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한 저리대출로 맞섰다.


어느 한쪽이 기우는 논쟁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IBRD의 미국 비판은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미 하원이 지난 주말 통과시킨 '농가보조법안'에 대한 IBRD의 혹독한 비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법안은 미국 정부가 농업보조금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농업관련 지출을 10년 간 1천8백억달러(약 2백34조원)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들 농가들은 이미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있는 터여서 돈다발이 덩굴째 굴러오게 된 셈이다.


이 법안에 IBRD가 발끈한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IBRD가 가장 역점을 두는 과제는 바로 최빈국들의 빈곤퇴치다.


IBRD는 최빈국들이 절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자국 농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동안 선진국들의 농업보조금이 최빈국의 가난 탈출을 막아 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국 농가보조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자 익명을 요구한 IBRD 관계자는 이렇게 공격했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자국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아프리카의 절대 빈곤층은 절반으로 줄었을 겁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유럽의 농가보조금이 많다고 불평하던 미국이 그럴 수 있나요.


철강 수입규제조치에 이어 이런 법안까지 통과된 마당에 미국이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나라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법안은 이번 주 상원통과 및 대통령 서명을 남겨두고 있다.


갈수록 동조자를 늘려가고 있는 IBRD의 비판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