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남측 최동섭 상봉단장과 북측 최창식 방문단장은 2일 오전 10시40분부터 약30분 동안 남북 이산가족의 개별상봉장 가운데 5개 객실을 둘러봤다. 양측 단장은 함께 방에 들어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몸은 괜찮냐"고 물으며 개별상봉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0..."왜 안 오시나." 동생 이수연(아명.옥자)씨와 고모, 조카 등을 만난 리철수(74)씨는 남쪽 가족들이 466명이나 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길어져 오전 10시가 넘어서도 나타나지 않자 방문을 열고 마중을 나왔다. 문 밖에서 기다리다 수연씨 등 남쪽 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한 철수씨는 "다른 사람들은 2∼3명씩 만나는데 우리는 한명(동생)만 만나니..."하며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철수씨는 "영 만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만나니까 꿈인 것 같다"며 "장군님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보는 두 사람이 새삼스러운 듯 고모에게 "10년은 젊어보인다"고 덕담을 건넨 뒤 동생에게도 "옥자, 너도 젊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모 이채분씨는 "나 아주 떠나기 전에 만나야지..."라고 이별의 세월을 곱씹었다. 철수씨가 정치적인 얘기를 계속하자 동생 옥자씨는 남쪽에서 준비해 온 가족 앨범을 꺼냈고, 함께 방에 들어온 북쪽 관계자가 북쪽 사진도 꺼내보라고 거들자 철수씨는 김정일 위원장 사진첩을 들고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6.25때 북한군이 인천까지 내려왔을 때 대학생이었던 리철수씨는 학교 간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됐다. 가족들은 죽은 줄 알고 호적에서도 지웠는데 작년 10월 철수씨 이름이 들어있는생사확명단에 가족들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철수씨의 남측 동생은 지난해 5월하순에 사망했다. 수연씨는 올케인 철수씨 부인을 위해 금가락지도 준비했다. 0..."김일성 주석께서는 일찍이..."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에서 살다가 6.25전쟁 당시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북쪽으로 건너간 최병채(73) 할아버지는 2일 오전 금강산여관 8층 6호에서 남측 가족을 만나 탁계한 김일성 주석의 저서를 들고 체제선전을 했다. 어느새 중년이 된 딸 최명희씨는 난생 처음 본 사위가 큰 절을 드리려 했지만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졌다. 남쪽 가족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최 할아버지는 또 방 탁자에 놓여 있던 `훈장증'과 `영예군인증(상이군인증)',`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대표증'을 손에 들고 자랑하기도 했다. 북쪽 안내원과 기자들은 "영예군인이십니까"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선물교환도 매끄럽지 않았다. 최 할아버지가 북쪽 안내원과 북쪽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장군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이라는 `백두산 들쭉술'과 `인삼곡주', `려과(필터)담배' 등을 꺼내자 남쪽 지원요원이 "대한적십자사 선물도 꺼내보라"고 요청,남쪽 가족이 `한적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남쪽 동생이 형님에게 드리려고 준비해 온 금반지는 맨 마지막에 최 할아버지손에 끼워졌다. 0...남쪽의 김광훈(金光勛.76), 광유(光裕.71), 광선(光善.65), 경자(敬子.61.여) 남매는 2일 오전 금강산여관 7층 11호에서 북측 형제인 광보(光普.68)씨를 만나반세기 만에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광유씨는 "내가 셋째고 광보가 넷째인데, 옛날에 한 이불 덮고 자며 옥신각신하던 생각이 난다"며 "형제 가운데 우리 둘이 가장 닮았다"고 동생 광보씨의 어깨를감싸 안았다. 6.25 당시 서울중학교에 다니던 광보씨는 "열여섯 나이에 홀로 북에 온 뒤 길주임업전문학교, 원산농업대 등에서 산림학을 전공,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며 "가족들과 두세 달 뒤면 만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50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됐다"고 추억을더듬었다. 5남매는 전날 격정에 못 이겨 눈물 섞인 상봉을 했던 것과는 달리 이 날은 옛이야기로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