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리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본부 한 회의에서 '선박수출신용양해' 제4차 수정안이 발효됐다.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회의는 한국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친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 선박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99∼2000년 중 조선 수주실적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고,선박은 최근 10년간 수출 5위이내 품목으로 등장했다. 특히 선박 건조 기술력은 우수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어 조선산업은 앞으로도 경제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제1위 조선수출국 위치를 유지하고 계속적인 수주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선박수출에 대한 금융상의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박 수출금융은 흔히 선박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게 된다. 하지만 해운업의 시황에 따라 선박 담보가치의 등락이 심하고,선박 수입국의 국가신용위험(Country Credit Risk)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금융회사가 단독으로 취급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박수출국들이 자국의 수출입은행을 통해 선박수출을 지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OECD는 지난 69년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선박에 대한 수출금융의 지원조건을 규정한 '선박수출신용양해'를 제정했다. 현재 한국 일본 등 17개 회원국이 이를 준수하고 있다. '선박수출신용양해'는 그동안 네 차례 개정됐고,지난 3월 4차개정안이 정식 발효된 상태다. 90년 이후 국제적인 저금리 추세에 따라 해외수입자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해 선박대금을 일시에 모두 지불하는 조건으로 선박을 발주,선박 수출금융의 수요는 크게 줄고 있다. 이번 개정으로 선박 수출금융의 지원조건이 개선되어 앞으로는 연불거래(외상)형태의 선박 발주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근과 같이 국제시장 장기차입금리가 연 6% 내외의 저금리 기조하에서는 새로 적용되는 상업참고금리(5.71%,7년물 기준)도 담보제공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면 상업금융에 비해 유리하지 못하다. 따라서 이번 선박수출신용양해의 개정과 더불어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활동에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차원에서 선박수출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첫째,선박 수출금융에 대한 담보로서 세계 일류은행 지급보증서를 요구해 왔던 관행을 과감히 개선,선박 자체를 담보로 취급하거나 운송료 수입을 담보로 인정하는 등 지원조건의 탄력적 운용이 선결과제다. 또 리스크가 높은 개발도상국 등이 선박을 발주하는 경우 이들 국가의 신용위험을 은행이 받아들여 수출자에게 부담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유수한 해외 금융회사와의 협조융자다. 특히 유럽 금융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선박본선담보 등을 활용해 신디케이션 방식으로 선박금융을 취급했고,이에 대한 노하우도 갖고 있다. 향후 한국의 선박수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방식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셋째,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의 선박수출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최근 나이지리아 등 개도국들이 석유·가스개발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석유나 가스의 운송선박을 확보하기 위해 운송료 수입을 담보로 선박을 구매하는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의 선박을 발주하고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박신용양해와 선박수출금융제도의 개선내용을 국내 조선업계가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연불거래에 대한 선박 수출금융 지원조건이 개선되고,선진 금융기법 활용으로 금융경쟁력이 대폭 개선되는 이점을 충분히 이용해 국내 조선업계가 선박의 수주단가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익성도 높아지고 선진국이 제기하는 덤핑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는 금융권이 수출자인 국내 조선업계 뿐만 아니라 수입자인 해외 선주들이 선박 수출금융을 활용해 한국 선박을 발주하도록 더욱 활발한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