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행계 카드회사에 근무하는 채권추심 직원 B씨(35.남)에게는 요즘 이상한 증후가 생겼다. 신문이나 방송에 '채권추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카드회사에서 채권추심 업무를 맡고 있다는 말만 꺼내면 싸늘해지는 주위의 시선에 '내 팔자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자'며 스스로를 안정시켜 왔다는 B씨. 그런 그도 요즘에는 "스트레스를 받기는 받는 모양"이라며 씁쓰레 웃는다. 카드회사들은 요즘 채권추심 업무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질타에 코너로 몰려 있다. 추심업무와 관련해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목청을 높이는 소비자 단체, 걸핏하면 새로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정부에 대해 업계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란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카드업계도 할 말은 있다. A카드회사의 J부장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회원들을 끌어들인 측면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카드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묵인해 오던 정부가 갑자기 모든 책임을 업계에 떠넘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소비자 권익을 강조하는 나머지 신용불량자를 너무 순진하게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계 카드회사에서 추심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추심대상이 되는 신용불량자 가운데 상당수는 지능범"이라며 "'힘없는 서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실성 없는 정부정책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25개 카드회사 담당 임원들을 불러모아 협박 부모.형제 등 친인척 압박 저녁 7시 이후 전화독촉 등의 무리가 따르는 채권추심 행위를 중지토록 당부했다. 이같은 행위를 지속하는 카드사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의 영업 일부정지 조치를 내리는 등 엄중한 제재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협박이나 부모.형제 등 친인척을 압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LG 삼성 국민 등 7개 주요 카드사가 지난해 9월 합의한 '채권회수 업무 협약서'를 통해 11월부터 자체 제재에 들어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게 카드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저녁 7시 이후에 전화 독촉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추심 직원이 일과시간에 카드빚 있는 사람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야간에 전화를 하지 않으면 채권 회수가 쉽지 않다는 것. 금감원이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했다고는 하지만 신용카드의 역사, 문화적 전통 등이 전혀 다른 서구의 제도를 당장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24조3항)에 따라 카드사가 채무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채무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를 알리지 못한다는 사실도 고려돼야 한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책임의식 없는 소비자도 문제 =국민은행이 최근 주택은행과 통합한 후 국민카드 고객 가운데 4개월 이상 연체자들의 주택은행 계좌를 조사한 결과 계좌에 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4만4천여명이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수천원에서 수만원 정도의 소액만 남아 있어 사실상 파산상태인 경우도 많지만 카드빚을 충분히 상환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례도 꽤 있었다는게 국민은행의 설명. 결국 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다른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는 것은 은행 통합 등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카드사들이 회원의 거래계좌가 아닌 다른 은행 계좌를 조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돈이 있으면서도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연체자들이 꽤 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카드사에도 책임 있다 =물론 카드사가 채권추심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으로 코너에 몰린 데는 그들 스스로의 '원죄'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 개인신용을 제대로 짚어보지도 않고 회원모집에 혈안이 됐던 것은 업계 스스로도 책임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올해를 '연체율 관리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추심 이전 단계에서 아예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카드가 올 한해 연체율 관리를 경영의 화두(話頭)로 제시했다는 점은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카드의 이경우 사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회사 경영전략을 수익성 위주로 전환해 연체율을 낮추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 특별취재팀 =이학영 금융팀장, 고기완 허원순 백광엽 정한영 박수진 박해영 김인식 최철규 송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