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극사상 최초로 고려사를 정면에서 다룬 KBS 1TV 대하사극「태조왕건」이 오는 24일 제200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지막 방송은 백제의 몰락과 함께 왕건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왕건에게 투항한 견훤은 선봉장을 자처해 백제를 정벌하러 나서, 황산벌에서 신검의 백제군과 맞선다. 백제군은 자신들의 전 군주에게 차마 창끝을 들이대지 못하는 가운데 전투는 고려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고, 신검은 백기를 들고만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린 견훤은 원통한 마음에 등창이 도져, 완산주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고, 이와함께「태조왕건」은 2년여에 걸친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태조왕건」은 조선시대로 편중돼있던 사극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과거 고려사를 다룬 사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조선의 개국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공민왕 이후 고려의 몰락을 그린것들이었다. 후삼국시대는 대중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부각시켜 친밀도를 높였으며, 거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스펙터클한 화면으로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작진의 노력은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시청률조사전문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그간 방송됐던「태조왕건」의 평균시청률은 37.2%였으며,궁예가 죽음을 맞이한 장면이 방송된 제120회분은 56.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태조왕건」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안방극장에서만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야외세트가 마련된 문경, 안동, 제천 등은 새로운 관광명소로떠올라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각 지자체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는 정치인들을 태조왕건의 등장인물에 빗댄 '태조왕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왕건과 고려사를 다룬 교양서적의 출간붐이 일고, 후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컴퓨터게임이출시된 것도 모두 드라마의 힘이었다. 안방극장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대한 화면으로 눈길을 끌었던「태조왕건」인만큼 투입된 인원과 비용도 막대했다. 그동안 제작에 참여한 연인원은 40여만명. 사용된 말은 8천여필, 제작된 의상은 4천500여벌에 이른다. 세트장 부지 평수만도 문경2만여평, 안동 1만2천여평, 제천 8천여펑으로 모두 4만여평에 달한다. 세트 제작비, 연기자 출연료 등을 합친 총 제작비는 약 100억원으로 추산되며,매주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던 제작진의 총 이동거리는 10만㎞를 넘어선다. 「태조왕건」은 스타탄생의 산실이기도 했다. 개성있는 조연연기자 정도로 치부됐던 김영철은 카리스마 넘치는 궁예역을 맡으면서, 국민배우로 부상했다. 김영철은지난 2000년 KBS 연기대상을 차지하며, 생애 최고의 해를 맞기도 했다. 현재 김두한을 소재로 한 SBS「야인시대」에 캐스팅돼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타이틀롤을 맡은 최수종의 공로 또한 지나칠 수 없다. 김영철에 이어 지난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그는 왕건의 이미지를 지켜나가기 위해 쏟아지는 CF 섭외도 마다하고, 오직 한편의 드라마에만 정성을 쏟아부었다. 견훤 역의 서인석은 궁예의 죽음 이후 다소 기운이 빠진 드라마에 다시 활력을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훌륭해 해냈다. 이밖에도 박술희 역의 김학철, 태평 역의 김하균, 애술장군 역의 이계인, 신검역의 이광기, 아지태 역의 김인태 등「태조왕건」을 통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뛰어난 연기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이 드라마의 안영동 책임프로듀서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기획의도는 후삼국 시대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주적인 통일의지를 지닌 왕건이 관용과 덕으로서 삼국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부각시키자는 것이었다"며 "이를 통해 남북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간직한 한반도의 통일도 관용과 용서를 바탕으로한 화합이 우선돼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KBS 1TV는「태조왕건」후속으로 오는 3월 2일부터 고려의 제4대 임금인 광종의일대기를 다룬「제국의 아침」을 방영할 예정이며, 이후에도 향후 10년간 475년의고려사를 조망하는 대하사극을 잇따라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천추태후, 무신정권,삼별초, 공민왕 등이 주요한 소재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승현기자 vaida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