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10일 미국 동시다발 테러사건의 핵심 행동책으로 지목되고 있는 모하메드 아타(33)의 생애를 집중 추적, 엄격한 교육을 받은 다소 소심한 성격의 아타가 테러범으로 돌변하게 된 과정을 보도했다. 아타는 경제적 성공을 중시하는 변호사 출신의 아버지와 아들을 응석받이로 키운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서구세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사상이 충돌하고 있는이집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집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때만 해도 아타는 현대적인 성향을 가진 부모의 지대한 관심속에서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다소 수줍은 성격의 근면한 아이였다. 아타의 아버지는 최근 인터뷰에서 "아타에게 정치는 위선과 동일하다고 교육했으며 박사 학위를 받은 2명의 누나들처럼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밝혔다. 또 아타의 고등학교 동창인 모하메드 하산 아티야는 "아타가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했지만 그의 부모는 아타가 항상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길 희망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아타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은 아타가 10대가 된 지난 1981년 안와르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로 이집트 전역에 사회적.정치적 소요가 발생하면서부터이다. 미 수사당국은 아타가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사다트 대통령의암살로 촉발된 이집트의 소요를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타의 아버지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시기에 아타가 이전과는 달리 이슬람에 좀더 심취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아타는 1990년 이집트 카이로 대학의 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독일 함부르크 기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아타는 독일 유학 초기에 한 도시건축계획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정중하고 산뜻하게 옷을 입는 평범한 청년으로 지냈다. 그러나 아타는 이후 이국땅에 홀로 떨어져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학주변에 살고 있던 터키와 아프리카, 아랍 이민자들로부터 위안을받으려 시도하게 됐다. 아타는 이 과정에서 유년시절에는 그다지 확고하지 못했던 이슬람에 대한 믿음을 심화시켜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아타는 미국에 우호적인 이슬람 사원을 회피한 채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이슬람 사원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수사당국은 심경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아타가 지난 1996년 또다른 테러용의자로 지목된 알-셰히와 지아드 사미르 자라흐와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테러범으로 변신하는 계기를 맞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아타는 1997년 11월 이후 갑자기 1년여 동안 독일에서 행방을 감추었다.수사당국은 아타가 이 기간에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테러캠프에서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당국은 아타가 1999년 초에 함부르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때 함부르크의 테러조직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타는 1999년 8월 논문을 제출해 함부르크 기술대학을 졸업한뒤 2000년 6월에미국으로 건너간다. 아타는 이후 15개월여 동안 비행훈련을 받으면서 미국 각지를 여행하고 유럽을 두 차례 이상 여행했다. 미 수사당국은 아타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분주한 활동을 벌이며 동시다발 테러범들과 접촉했으며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알-카에다 조직원들과 만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강일중특파원 kangfa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