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TV 방송을 보고 대통령과 국민들이 같은 배를 탔다기보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지난 2월말로 4대 개혁이 큰 테두리를 잡았으며, 미국경제가 좋아지면 우리 경제도 급속도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청석과 거리에서는 현 경제상황과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또 정부는 4대 개혁의 틀이 완료됐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시장 경제의 작동''에 경제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중에는 시장 경제 작동의 기본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팽배하다.

이러한 정부와 국민의 견해 차이를 단순히 ''눈높이 차이''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40년 동안 잘못되어온 우리 경제의 관행을 단시일 내에 개선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나, 개혁이 시작된지 2년만에 그것이 일단락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기업 부문에서 아직까지 대우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투신 문제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 금융지주회사의 설립 등 일견 가시적 성과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관과 경제부처의 관료들은 아직도 은행의 인사와 경영에 간섭하려 하는 등 구태의연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혁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와 더불어 지난 가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흥 코스닥 재벌들의 사기대출 스캔들은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정도가 심각함을 노출시켰다.

공공부문에서는 공기업 사장들의 비전문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공기업은 한국경제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그 대표도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영능력이 선발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이 정치적 보상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된다.

정부는 곧 10여명의 공기업 사장 및 임원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는데 국민들은 이 과정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부문의 개혁에 대해서는 별다른 개혁의 성과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외국 기업들은 여전히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신들만 희생을 당한다고 보고 있어 노사간의 시각차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 우리는 4대 개혁의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면서 ''의식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 제도는 빛을 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것은 법이나 제도의 차이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준법정신 차이다.

한 나라 국민의 총체적인 의식 수준이 그 나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은 ''잘 살아 보세''라는 의식개혁이었으며, IMF 구제금융 위기에서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서민들의 애국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공황을 맞은 미국 국민들이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 외에는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신있는 리더십으로 희망을 갖게 했다.

또 경기 침체로 인해 미국이 이류 국가로 전락하려던 1980년대 초 레이건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이라는 슬로건으로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제2의 경제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러한 도전이나 소망이 없다.

''대통령과의 대화''나 야당 총재의 ''지하철 민심 듣기''에서 보았듯이 현재 우리 국민의 의식 저변에는 불안과 냉소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어 그들의 침체된 의식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가.

정부는 이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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