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그때 대해실업의 비서실 직원이 진성호 옆에 와서 머뭇거렸다.

진성호는 문상객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바쁘신데 이제 가시지요"

진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날 자세를 취하며 권혁배에게 말했다.

"백인홍 사장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지요.

참,백인홍 사장은 대해실업으로부터 인수한 회사의 노조 때문에 너무 골치를 앓은 것 같아요.

진 회장님께서 어떻게 좀 도움을 줄 수 없습니까?"

권혁배의 말에 황무석 부사장이 정색을 표했다.

"대해실업에서 관여할 성질이 아닙니다.

제가 정보분야의 친구에게 들은 건데,백인홍 사장은 재야 노동단체에 전형적인 악덕기업인으로 찍혔답니다.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예요"

"미친놈들! 무슨 이유로 백인홍 사장이 악덕기업인이란 말이오?

열심히 사업을 한 것 외에 무슨 죄가 있다고"

권혁배가 투덜댔다.

"저는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백인홍 사장의 집안 내력에 안 좋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황무석이 덧붙여 말했다.

진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부터 진성호는 한 시간 동안 빈소에서 문상객을 맞기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 문상객이 뜸해진 사이 화장실에 다녀와서 자리에 앉아 피로한 다리를 쉬고 있을 때 그 앞에 갑자기 세 남자가 나타났다.

진성호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천익수 형사가 정동현을 폭행한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을 데리고 왔던 것이다.

두 청년 중 한 청년은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고릴라''라고 자칭한 술집기도였다.

나머지 한 청년은 같은 기사에서 ''침팬지''라고 자칭한 자일 것이라고 진성호는 직감했다.

그들이 빈소에 들어와 영정에 재배를 하는 사이 진성호의 두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어떤 남자로부터 대면없이 목소리로만 폭행 지시를 받았다''라는 그들의 진술을 천 형사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천 형사는 그들에게 폭행을 지시한 자와 이정숙을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 자를 동일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고,그자가 바로 자기 자신을 지목하고 있음을 진성호는 알아차렸다.

두 청년을 빈소까지 데려와 두 청년과 자신의 반응을 보려는 천 형사가 괘씸했다.

혹시나 폭행을 지시한 자를 대면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진술을 믿고,자신의 목소리를 ''고릴라''라는 청년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진성호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들 세 사람이 영정에 재배를 마치고 상주인 자신에게 큰절을 하는 바람에 진성호도 그들과 같이 똑같이 했다.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 형사가 날카로운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말했다.

진성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천 형사가 일어서자 두 청년도 똑같이 일어섰다.

"발인은 언제입니까?"

천익수 형사가 선 채 진성호에게 물었다.

"3일…장입니다"

진성호가 머뭇거리듯 나직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