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는 심술궂다.

다 싸잡아 ''심술궂다'' 하기가 좀 심하다 싶으면 ''심술피우는 남자''가 너무 많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는 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여지없이 심술궂다고 해야할까.

심술 부릴줄 알아야 우리나라에서 비로소 한자리 할 수 있는 것일까.

노회한 정치인들의 심술은 대단하다.

그중 한 소수당의 리더는 심술 플레이의 놀라운 경지를 보여 준다.

''정치꾼 정치인''들에게 국회란 정치의 장소가 아니라 심술 플레이의 장소일 뿐이다.

그러니 그 심술 전술을 짜내는 정당안의 구조는 또 어떨까.

대기업 오너와 실세들의 심술 역시 대단해 보인다.

시장 논리와 시장평가에 대해서 좋은 말로 하면,도대체 초연하다.

그 어떤 위기 상황도 극복이 아니라 ''모면할 수 있는 순간''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

자신의 자리와 이익과 행동거지에 대해 뻔뻔스럽다할 정도로 당당하다.

그러니 그 기업의 내부구조는 또 얼마나 ''심술적''일까.

가장 합리적일 것 같던 전문직 의사들의 풍경도 정말 어안이 벙벙하다.

현장에서의 개혁 현실화에 대한 명철한 분석없이 준비없는 개혁을 밀어붙인 ''개혁남''들도 문제지만,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집단행동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의사집단을 보면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합리성과 공공성이란 다 어디로 가버렸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새 가장 괜찮게 보이는 남자들은 분단 50년만에 가족을 만나 울음을 터뜨리는 남자들이다.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괘념하지 않고 순수함과 따뜻함을 그대로 내보인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슈앞에서 쓸데 없는 욕심같은 것은 아예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감동의 장면은 ''극적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이 일상의 수많은 문제에 대해 면죄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 남자들은 왜 이렇게 심술이 많은가.

심술(心術)이란 힘쓰고 싶으나 도저히 힘도 없고 힘도 못쓰겠고 할 때 나오는 마음의 술수 아닌가.

힘쓰고 싶고,남에게 힘을 인정받고 싶고,자신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될 때 부리는 것이 심술이다.

정도가 통하지 않을 때 편법으로 나오는 것이 심술 플레이다.

한국 남자들의 ''골목대장''속성,''닭대가리''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떼쓰기''가 허용되고 ''소 영웅주의''가 판을 친다.

나이에 관계없이 마치 다들 ''마마보이'' 같다.

문제는 이런 심술이 여전히 허용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다.

얼마나 비합리적이든,어떻게 부정부패에 연루됐든, 얼마나 심술을 부렸든 간에 여전히 정치권에 살아남고 어정거릴 뿐 아니라 결국 사면 복권까지 되는 현실에서 도대체 어느 남자가 심술을 버리고 합리적이 되려 하겠는가.

이런 ''골목대장'' 한국남자형으로 어떻게 세계 사회를 살아갈까.

한국안에서야 서로 토닥이고 줄 서고 축배에 폭탄주 돌리고,골프와 사우나에 룸살롱까지 기막히게 배포를 맞추겠지만,한 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도대체 누가 이런 한국 남자를 믿겠는가,누가 이런 남자를 좋아하겠는가,누가 이런 남자들 우글거리는 한국에 기꺼이 미래를 투자하겠다고 하겠는가.

외환위기를 단기적으로 넘겼다고 흥청망청하고, 다시 정권다툼에 몰두하고, 이권 챙기기에 몰입하는 한국 남자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레임 덕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미국 클린턴의 홀대받기가 차라리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자기의 시간에 어떤 분명한 역할을 해내고 이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나가는 남자면 되는 것 아닌가.

한국 남자들,이래서야 어디 믿겠는가.

부디 분발하라.심술로 일그러진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온 나라가 불쾌지수로 가득 차 있다.

바야흐로 세계속의 남북 시대다.

북한 남자도 한몫을 하고 껴안아야 할 판이다.

한국 남자여,부디 골목에서 벗어나라.심술을 거두라.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현장을 읽어라.''일''을 중심으로 움직여라.한국을 행복하게 만들어다오.

...............................................................

◇필자 약력=

△서울대 공대
△미국 MIT대 석사 박사
△KIST 지역개발연구소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1기 위원
△세계화 추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