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는 연착륙(soft landing) 했는가.

우선 미국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낙관론을 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대부분의 신문들은 "미국경제라는 비행기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따라서 연착륙을 위한 관제탑의 허가는 이미 떨어졌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경제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연준리(FRB)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지난 20일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한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은 "최근 수개월동안 경기가 감속징후(clear sign of slowing)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은 "공인이 취할 수 있는 신중한 자세" 정도로 가볍게 평가해 버리는 분위기다.

특히 시사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24일자)는 "그린스펀의 전통적 입장에 비추어 그의 "우울한 정서(somber affect)"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고 보도했다.

무뎌진 성장률,안정된 물가등 연착륙을 예고하는 바람직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그린스펀이 극단적인 신중함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모든 해답의 열쇠는 노동시장에 달려있다는 게 이곳의 중론이다.

상원증언에서도 그린스펀은 "목에 찬 자원활용율(resource utilization) 특히 노동시장의 수급불균형이야 말로 인플레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드는 최대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일손부족은 임금상승으로 이어져 물가상승을 부른다.

물가상승은 또 다른 임금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가속적(accelerated) 순환고리"로 바뀔 수도 있다.

결국 노동시장은 사람의 집단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다루기 매우 어려운 시장이다.

그린스펀이 언론의 낙관론에 쉽게 동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이유때문이다.

그린스펀의 주저와 망설임은 "최적실업률(NAIRU)"에서도 비롯되고 있다.

"가속적 임금상승"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는 한계선 즉 미국의 최적실업률은 5%정도라는 게 미국 주류경제학자들의 인식이었다.

따라서 실업률이 이 5%선 밑으로 내려가면 임금상승이 촉발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나타난 "신경제현상"을 적용해보면 이것도 먹혀 들어가지 않는 가설에 불과하다.

때맞춰 일단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최적실업률은 기존 기준치인 5%보다 낮은 4.5%"라는 논문을 내놓았다.

모두가 공인하는 잣대를 가지지 못한 재단사로 비유되던 그린스펀에게 노동시장 재단을 위한 새로운 잣대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낳고 있지만 오히려 논쟁만 증폭시켰다는 평가도 많다.

조지 애커로프 UC버클리대교수,조지 페리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 그리고 같은 연구소의 윌리암 디킨스 연구위원이 내놓은 주장대로라면 미국은 실업률이 4.5%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임금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달이 미증유의 생산성증가를 불러왔고 이같은 진보가 "노동시장의 여유"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이라면 미국경제를 위해 이만큼 반가운 소식도 없다.

물론 이들이 이번 논문을 통해 "실업마지노선"을 0.5%포인트 내려놓았다고 해서 미국에 일손부족이 심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6월말 현재 미국의 실업률이 4%이니까 이들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4.5%를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실업률은 최적수준보다 0.5%포인트나 낮은 상황이다.

이래저래 미국의 일손부족은 여전하고 따라서 임금상승압력은 상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그린스펀의 신중함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당위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www.bjGlob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