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점을 명확히 짚어내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근.현대의 성격이나 시기를 가르는 명확한 준거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태동을 살필 수 있는 열쇠는 추상미술이다.

그 발단은 1930년대부터 50년대 후반까지 나타난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미술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김환기나 유영국같은 젊은 작가들이 일본의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영향을 받은 추상미술을 시도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는 이후 파리와 뉴욕에서 민족의 정서가 녹아있는 추상화를 제작하며 추상미술의 흐름에 이정표를 세웠다.

6.25 전쟁을 겪은 50년대엔 유럽으로부터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받아들이며 후반부터 폭발적인 잠재력을 분출한다.

60년대말부터는 개념미술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추상미술이 "전위"의 이름을 버리고 "사조"로 정착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같은 우리 추상미술의 뿌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전.

이 미술관이 97년 시작한 근대미술전에 이어 마련한 첫번째 현대 추상미술전이다.

최근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격정과 표현"전이 서구와 한국의 추상미술 세계를 비교해 보는 재미를 주었다면 이번 전시회는 해방 이후 50,60년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초기 모더니즘을 포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다.

전시작은 작가 1백여명의 작품 2백여점.

장르는 서양화 한국화 조각으로 나눴다.

남관의 "낙조"(58년),양수아의 "작품"(62년),이규상의 "컴포지션"(63년)을 비롯해 80여점 정도가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다.

권위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국전에 대항한 반국전의 세력결집에 도화선이 되던 "4인전"(56년)의 작가들(김충선 문우식 김영환 박서보)도 44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김환기 "산월"(58년),박래현 "노점"(56년)"유영국 "산"(59년),김종영 "작품 58-3"(58년),이응로 "해저"(50년)등 대작들도 만날 수 있다.

주최측은 논쟁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초기 모더니즘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신경을 썼다.

장영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회는 50~60년대라는 역사적 시기에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미술사를 정립할 계기를 마련하는 의미"라며 "내년에는 60년대 후반 기하학적 추상부터 70년대 후반까지의 추상미술전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7월27일까지.

<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