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한하다.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다.
생활은 때로 더 큰 족쇄를
채우기도 한다.

인간은 또 초월적이다.
늘 자신을 규정짓는 시공간에서 벗어나려 한다.

누구든 그 성공과 실패의
좁은 경계선 위에서
일희일비한다.

시간과의 싸움은 어쩔수 없다.
강제로 잡아 늘리기 힘들다.

상대가 공간이라면
희망이 보인다.
공간은 확장이 가능하다.
얼마든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여행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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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한정된 삶의 경계를 확산시켜 풍요로이 만드는 한 수단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유형의 축적이 없어도 좋다.

대부분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불거졌다가 이내 스러질지 모를 순간의 자유와 짧은 감탄사 하나면 충분하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마을.

지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과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비상하는 용처럼 휘감아 돈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앞길을 가로막는 비룡산(1백90m)의 기세에 눌린 내성천 물은 오른쪽으로 꺾인다.

3백50도 되돌아 왼쪽으로 빠진 후 금천과 만나고 다시 낙동강과 합류한다.

그 내성천 굽은 물의 품안에 안긴 땅이 회룡포 마을이다.

찬찬히 풍선을 불어 물위에 눌러 놓은 것 같다.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돌아 흐르는 곳에 자리잡은 안동 하회마을의 지형과 견줄 수 있다.

5만6천여평의 좁은 땅.

9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다.

물이 빠져 거친 모래사장이 많이 드러난 내성천 한 편엔 엉성한 "뿅뿅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녹슨 강판을 잇대어 만든 다리다.

몇 년전 뚫린 산길과 함께 회룡포 마을을 바깥 세상으로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얼마전까지 의성포 마을이라고 했다.

1백리 밖 의성지역의 상인들이 이 곳에서 팔 소금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해 그렇게 불렀다.

요즘은 의성에 있는 지역인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 예천군청 주도로 새 마을이름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사람들은 육지 속의 섬마을이라며 흥분하지만 별 것 아닐 수 있다.

사실 약한 곳을 파고드는 물의 속성이 빚어낸 땅의 별난 형상일 뿐이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뭐 볼게 있다꼬 글케 와요?"

심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드세다.

외지인들이 땅모양 한번 보겠다고 몰려와 평화를 깨뜨리는데 대한 분풀이도 담긴 것 같았다.

하지만 낯선이들의 편에서 본 회령포 마을은 보기드문 절경으로 와 닿는다.

그 탄성은 내성천 맞은편 비룡산의 오밀조밀한 트레킹코스를 밟은 뒤 땀을 훔치며 내지르게 마련인 것이어서 더욱 신선할 수밖에 없다.

비룡산은 솔향기 가득한 야트막한 산.

"용주팔경시비"(龍州八景詩碑)에서부터 시작되는 트레킹코스는 굵고 가는 소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간간이 장끼와 까투리가 날아 오르는 예쁜 산이다.

땀을 식히기 위해 들러보게 되는 사찰 장안사로부터 2백m.

팔각정자로 만들어 놓은 제1전망소에서 바라보는 회룡마을의 모습은 숨을 멎게 하기에 충분하다.

산 아래에서 옆으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땅만 다져 놓은 제2전망소에서의 조망은 좀 처진다.

제1전망소에서 받은 느낌이 워낙 강렬해서인 것 같다.

비룡산은 회령포 마을 조망 외에도 선물을 더 준비해 놓고 있다.

"따뷔성" "또아리성"이라고도 하는 원산성(삼국사기 기록)이다.

삼국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산성이다.

백제의 요새였던 이 산성은 삼국간 쟁탈전이 어찌나 심했던지 비오는 날이면 성아래 성저마을에는 아비규환속의 병사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예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