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섬유산업은 걸핏하면 ''사양산업''으로 불린다.

그러나 섬유산업은 인류가 옷을 입고 살아가는한 사양산업이 될수 없다.

특히 소득이 높아갈수록 하이패션 의류를 선호하므로 의류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떠오를 것이다.

<> 섬유의 용도가 변한다 =섬유기술이 발달하면서 흔히 옷감으로만 생각
하는 섬유의 기능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불에 타지 않고 열에 변형되지 않으며 축열 보온이 가능한 고기능성 섬유가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들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마이크로(초극세) 섬유 개발에 몰두
하고 있다.

이 섬유는 별도의 코팅을 하지 않아도 방수처리가 되며 인공피혁을 짜는 데
주로 쓰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양희 수석연구원은 "새털처럼 가볍지만 강철보다
단단하고 질긴 섬유가 곧 나타날 것"이라며 "21세기에는 세탁할 필요가 없고
기후 환경에 따라 보온과 습도 조절이 되는 다기능 섬유로 옷이 만들어질 것"
으로 전망했다.

또 섬유산업의 무게중심이 산업용 신섬유로 급격히 옮아가고 있다.

자동차 필터로 사용되는 부직포를 비롯, 토목 건축 전기 전자 스포츠 레저
등 전산업에 걸쳐 특수섬유가 기존 소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항공기 우주선 등에 들어가는 초강도.초내열성 섬유와 인공혈관 인공장기
등을 만드는 의료용 섬유, 지구온난화를 막아주는 환경보호용 섬유 등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은 섬유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개발방향은 고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용 섬유 등 첨단 신소재 분야.

이미 산업용 섬유의 비중이 전체 섬유소비의 50%를 넘고 있다.

세계 10대 섬유수출국 가운데 7개국이 선진국이다.

이들이 일반의류 생산기지를 한국 등 개발도상국에 넘겨 주고도 섬유
강국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비결이다.

<> 한국 섬유산업의 현주소 =한국은 세계 5위의 섬유수출국이자 세계 7위의
생산국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후발국가의 양쪽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품질은 선진국에 못미치고 가격경쟁력은 후발국가에 밀린다.

한국의 섬유산업은 대체로 설비가 낡고 자동화율이 낮은 문제점을 가졌다.

아직 소품종 대량생산의 후진형 산업구조다.

생산성의 경우 업종에 따라 일본의 50~80%선에 머물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비중도 15%로 선진국의 65%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범용품의 대량생산에 치우치다 보니 의류 제품의 소재 차별화율도 선진국
(70~80%)과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25%에 불과하다.

기술수준도 선진국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품질수준만 선진국의 90%선에 근접하고 있을 뿐 소재개발(70%) 면방(75%)
제직(75%)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다.

특히 섬유 제품의 부가가치를 결정짓는 염색기술은 60%선에서 맴돌고 있다.

또 선진국이 전략적으로 개발하는 산업용 신섬유 분야는 아직 걸음마 수준
에 그치고 있다.

대량 생산체제의 대기업은 선진국 기술을 본따는 수준이며 첨단 산업용
섬유를 개발하는 중소기업도 국산화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 앞으로의 방향 =21세기 섬유산업의 키워드는 고기능성 인간중시 환경보호
등 세가지로 집약된다.

이 요소들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선진국과의 경쟁에 나서기 어렵다.

한국의 섬유산업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탈바꿈하려면 <>신섬유 및
신소재 개발 <>염색가공기술 선진화 <>패션디자인 활성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구축 등 산업구조 재편작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져야 한다는게 전문가들
의 지적이다.

정부는 한국 섬유산업의 메카인 대구지역을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
인 섬유도시로 키우기 위해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03년까지 총 6천8백억여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섬유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첨단 염색가공기술을 개발하는 "다이텍 21" 등 기반기술 육성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의 규모보다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차세대 핵심분야인 산업용 신섬유 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등에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단적인 예로 섬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디자이너 등 고급인력은 아직
선진국의 20~30%선에 불과하다.

"숙련된 기능공은 많지만 정작 기술자는 별로 없다"는 말을 곱씹어 봐야 할
시점이다.

< 정한영 기자 ch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