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조정관이 15일 미 의회에 보고한 "페리 보고서"는 형식상으론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제안서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의 전 과정에 한국과 일본의 공조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3국의 공동 대북협상안으로 볼 수 있다.

향후 대북협상안의 "표준(standard)"인 셈이다.

페리 보고서의 공개는 한.미.일 3국이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대북 포괄적
접근구상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포괄협상에 빨리 응할 것을 촉구하는 시그널의 성격도
있다.

페리 보고서는 북한의 핵및 미사일 개발로 촉발된 위협을 종식시켜, 한반도
냉전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골간은 북한의 위협감소-양국간 관계개선-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등
3단계 로드맵을 따르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전향적인 해결의사에
맞춰 미국은 보다 빠른 속도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야 한다는게
핵심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분적 대북 경제제재해제 조치엔 페리의 정책보고가
이미 반영돼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페리 보고서는 남북관계와 관련, 제한적이지만 일부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이산가족 재회 문제다.

이는 앞으로 미국이 포괄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이 두 가지 사안에
관해서는 한국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남북 당사자간의 불신과 대결을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장기목표 실현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
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긴요하다는데 한.미.일 3국은 인식을 같이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정부는 남북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체제진입을
대북정책의 핵심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이에따라 북.미간 협상 등이 진전되면 미국은 금융 무역 투자 등 모든
상거래분야에서의 대북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대외 개방에 가속도가 붙게될 전망이다.

페리 보고서는 그간 무성했던 추측과는 달리 대북협상의 ABC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고 있다.

즉 북한이 A라는 행동을 보일때 미국이 A''라는 대응을 보여야 한다는 식은
아니다.

이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개된 "보고서"는 요약본이며, 의회에
보고된 "원본"은 18페이지 정도의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리의 정책권고안중 행정부내에서 대북정책을 조정할 인물로는 페리 팀의
일원인 웬디 셔먼 국무부 자문관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강석주 제1부상을 북.미 후속협상의 파트너로 격상시킬 가능성
에 대비한 포석이다.

페리보고서는 그러나 포괄접근구상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을 반드시
예상할 수 없고, 상존하는 북한의 도발위협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페리 조정관이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력히 권고한 것도 이런 맥락
이다.

페리보고서는 미 행정부가 한국정부에 그 내용을 통보하고, 정부가 국회
외교통상위에 보고하는 과정을 통해 공개됐다.

그러나 향후 북한과의 협상 등을 감안해 민감한 부분은 미공개로 남겨뒀다.

페리 보고서 공개 이후 미 행정부는 페리 조정관의 건의내용을 검토한 뒤
한.일 양국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게 된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